전영주 편집장
충남도와 논산시가 공동 주최하고 한국유교문화진흥원(원장 정재근, 이하 한유진)이 주관하는 ‘2024 한국유교문화축전’이 <K 유교, 세계를 잇다!>라는 주제로 9월 4일(수)부터 8일(일)까지 닷새간 펼쳐졌다. 한유진은 노성면 병사리에 2022년 설립된 우리나라 유교문화의 총체적 거점 연구기관이다. 설립된 지 불과 2년 만에 개최하는 첫 번째 축전임에도 불구하고 그 규모와 의미가 남달랐다. ▲선비회원 100명을 초대해 펼쳐진 ‘동행 토크콘서트’ ▲충남향교전을 비롯한 각종 ‘축전 전시회’ ▲‘효자고기 을문이를 찾아라!’ 등의 <축전 현장 이벤트>가 성황리에 펼쳐졌다. 또한, ▲‘K-유교 국제포럼’과 ‘K-유교 영어 스피치 경연대회’ ▲‘서원‧향교 프로그램’ ▲죽림서원 사제동행 투어 등의 ‘유교문화 프로그램’ ▲‘유교공연 프로그램’ ▲‘체험‧연계 프로그램’ 등의 다채로운 <축전 프로그램> 역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무엇보다도 판박이 프로그램으로 나열되는 기존 축제를 탈피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소통하고, 공간과 공간을 연결해 다양함을 공유하고, 시간을 연결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가는 의미있는 프로그램들로 채워졌다. 이번 축전으로 죽어가는 인문학을 심폐소생해 어짊과 옮음, 예의와 지혜, 즉 인의예지의 소중한 가르침을 다시한번 되새기며 유교문화의 새로운 활기를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보람되었다. 그런데 처음 접하는 축전임에도 낯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 이유는 우리의 정신과 마음속에는 유교적 가르침이 DNA로 이미 수천 년 동안 체화되어 있기 때문에 유교문화를 받아들이는데 거북함이 없었을 것이다.
진정한 선비(정신)의 구현을 위해
선비를 이야기하면서 ‘유교’와 ‘유학’이 무엇이 다른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혹자는 “유교는 종교이고, 유학은 학문이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이건 잘못된 주장이다. ‘가르칠 교(敎)’, ‘배울 학(學)’의 의미에서도 나타나듯이 ‘선생의 입장에서는 가르침’이고 ‘학생의 입장에서는 배움’이기에, “유교는 가르치는 입장에서의 개념”이고 “유학은 배우는 입장에서의 개념”인 것이다. 또한, 유교의 가르침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격체’를 말하는 <선비>는 기록상으로 세종 집권시 ‘용비어천가’에 처음 나타났다. 집현전을 설치해 학문을 장려하고 의례제도를 유교적으로 개편하면서 조선을 유교 사회로 만들어간 세종은 ‘용비어천가’를 통해 선비를 학문적으로 뛰어나고 도덕적으로 어진 인물로 정의하여 조선사회에 반포한 것이다. ‘선비의 삶’이란 ‘수기치인(修己治人)’인데, 공부를 해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선비가 아니다. 그런 사람은 소인배다. 진정한 선비는 공부를 해서 그것을 사회를 위해 이타적으로 공적가치를 위해서 일을 해야 선비인 것이다. 작금, 우리나라의 사회 갈등비용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념 갈등뿐만 아니라 지역, 계층, 세대, 젠더 갈등이 대한민국을 온통 뒤덮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우국충정과 견위수명의 정신을 발휘해 국난을 극복했던 선비의 정신과 공헌이 오늘날 다시 소환되고 있다. 이렇게 선비(정신)에 대한 담론은 활발해지고 있지만, 정작 선비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다. 선비가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은 채 여전히 “선비는 과거의 유물일 뿐이며 필요치 않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선비는 여전히 영욕(榮辱)의 대상이다. 선비의 학문적 영역과 선비의 위기지학의 길이 일치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가능성은 매우 낮다. 유학은 공리공담하는 학문이 아니고 현실에 맞는 학문 즉, 실학이다. 따라서 지식과 학문적 영역은 교수나 연구자들에게 맡기고, 일반 대중의 삶에 필요한 지혜와 현실적 조언을 할 수 있는 선비 집단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현재 한유진에는 2,400여 명의 선비 회원이 등록되어 있다. 지난 9월 6일(금), ‘동행 콘서트’를 찾은 선비회원들은 한여름 소나기처럼 내리는 빗속에서도 자리를 지키며 선비정신을 통해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선비의 확산방안과 한유진의 역할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했다. 필자는 이러한 열정이 있는 선비회원들을 소단위로 구성해서 교육시키고, 그들이 사회에 나아가 또다른 선비회원을 양성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연령별이든, 지역별이든, 직종‧직능별이든 ‘동아리’나 ‘단체’ 등의 소단위 선비 회원 그룹들이 구성된 후에는 그 ‘단체’나 ‘동아리’ 등을 다시 하나로 묶어주는 사단법인이나 사회적협동조합 등의 구조적 작업 또한 필요하다. 물론 이에 필요한 행정적‧금전적 지원 역시 전적으로 한유진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선비정신을 구현해야 한다”는 당위를 넘어 “어떻게 구현할 것이가?”라는 방향과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동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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