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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문학관 개관 특집] 김홍신과 논산, 논산사람들
기사입력  2019/06/12 [11:28] 최종편집    논산계룡신문

 

▲     © 논산계룡신문

 

지방정부는 유명작가 유치에 사활을 걸다시피한다. 지자체 브랜드 홍보 효과가 월등하기 때문이다. 인근 공주시는 들꽃시인 나태주가 공주시의 품격을 한껏 드높이고 있다. 시(詩)는 충분하니 이제는 소설(小說)로써 양날개를 달고자 하여 김홍신 작가에게 문학관을 제의하였단다. 이 제안을 거부한 김홍신의 변은 간단하다. “내가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공주를 어떻게...?” 

네이버에서 김홍신을 검색하면 “출생 1947년, 충청남도 공주”로 나온다. 이 대목이 논산에서는 시빗거리다. 김홍신 작가의 어머니가 몸을 풀러 공주 큰 집으로 갔단다. 출산 후 귀가하여 아들 김홍신을 키운 곳이 논산이다. 이 점을 불식시키고자 개관식에서는 동창 하나를 등장시켰다. 전 차관들 축사도 건너뛰는 판국에 마이크를 잡은 주인공은 초딩 이창구 전 자원봉사센터장이었다.  

 

논산을 배경으로 쓴 작품들

 

김홍신은 대건유치원, 부창+반월초, 대건중·고에 이어 건국대학교 국문과 졸업이다. 여기서도 고등학교 공주설이 오갔다. 엄마 따라 공주로 이사가 거기서 공주고등학교 잠시 다녔던 게 설화의 진원지다. 사람이 유명해지면 별거 아닌 것도 가십거리로 등장하는데, 이러거나 저러거나 그를 키운 땅은 논산이다. 

이를 입증해주는 건 동창의 증언보다 작품들이다. ‘고향 배경 리얼리즘 작품’, 즉 김홍신의 원체험 공간인 논산 일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다. 「본전댁」「기찻길 옆 오막살이」「난장판」「대곡」 등이 있다. 1976년 작가로 등단한 작품은 다름 아닌 「본전댁」이었다. 당시 ‘현대문학’에 추천 완료되었다. 「대곡」역시 논산을 배경으로 6‧25 전쟁 때 도주한 북한군 소년병을 다룬 소설이다. 김윤식 문학 평론가는 「대곡」을 동족상잔의 비극을 그린 수작으로 평가했다. 「난장판」은 논산읍 근교 ‘쌈짓골’을 배경으로 하층민의 해한(解恨)을 이야기한다. 

문학관 1층에는 작가의 대표작 󰡔인간시장󰡕을 원작으로 한 2차 창작 예술 영상과, 작가의 원체험 장소인 고향 논산 배경의 소설 󰡔난장판󰡕 등이 원형 무대에 연출돼 있다. 또 3층에는 논산을 시작으로, 서울과 평양을 넘어 동북아의 너른 벌판까지 이어지는 작가의 작품 속 주요 공간을 연결한 ‘문학 지도’를 작품 속의 소리를 들으며 감상할 수 있는 문학전망대도 있다. 유리창에 논산 지도가 그려져 있고 소설에 등장하는 지명들이 명기되어 있다. 조정래 『태백산맥』의 경우, 거기에 등장하는 지명은 이미 유명 문학기행코스가 되었다. 『김홍신의 대발해』가 더 각광을 받아야겠지만, 이제 우리에게 더 기대되는 곳이 있다. 바로 백제땅이다. 언젠가 『대백제』가 탈고를 하고 세상에 빛 보는 날, 우리는 귀에 익은 지명에 반가움을 표할 것이다. 외지인, 외국인 들이 찾아와 이곳저곳 물어볼 날도 기다려진다. 

 

▲ 김홍신작가와 남상원 회장    © 논산계룡신문

 

문체부장관과 시장의 축사 

 

김홍신 문학관은 논산의 문학센터이기도 하지만, 국내외 기자들과 문화정책입안자들의 이목이 쏠려 있는 태풍의 눈이다. 이번 개관식때 대독된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축사에 귀기울여 보자. 

“김홍신 작가는 1976년 현대문학에 소설을 발표하며 등단하여 『김홍신의 대발해』, 『난장판』등 수많은 작품을 집필했습니다. 특히 1981년에 발표한 장편소설『인간시장』은 대한민국 최초로 판매 부수 100만 부를 돌파하면서 문학 부흥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중략)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학진흥법의 제정을 통해 문학관 운영을 지원하고, 문학관이 지역주민에게 밀착된 문화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문학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국민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문학관 육성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문학진흥법의 혜택을, 이제 논산도 누리게 될 모양이다. 황명선 논산시장도 일맥상통하는 내용의 축사를 이어갔다.  “2011년 박범신 작가와의 인연을 맺어 논산을 인문학의 도시로 성장시켜 오다가 오늘 김홍신 작가님이 합류, 대한민국 대표작가를 이렇게 두 분씩이나 모시게 됐다”면서“한 사람의 삶은 곧 하나의 살아 있는 박물관”임을 전제한 뒤 지난해 6월 착공식에서 “논산의 원류를 살리는 가장 빠른 길은 문학을 앞세운 선비정신을 되찾는 일”이라는 작가의 말을 환기시켰다. “김홍신 문학관이 인문학으로 시대를 이야기하고, 인문학의 도시 논산의 문학적 가치가 더욱 높아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응원의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이 외에도 연이어진 대한민국 VIP들의 축사들에 대하여 최종 몰아서 답하는 주인공 김홍신 작가! 답사에서 그의 언어는, 문장은 구구절절 음미해볼 ‘인생사용설명서’들이다. 

 

▲     © 논산계룡신문

 

숨겨진 은인들 이름 기록할 터

 

“인연이란 혼자 백두산에 올라가 바늘 한 개만으로 백두산을 파내어 평지를 만들면 한 겁이라 하고, 백두산을 억만 번 평지로 만들면 비로소 인연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저는 오늘 그런 인연 공덕으로 귀한 분들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기쁨이 웬만하면 마음이 출렁거리고 웃음이 절로 나겠지만 기쁨이 엄청나게 크면 말과 글로 표현할 길이 없어 멍청해집니다. 저는 지금 멍청이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생존작가의 문학관이 이렇게 장중하고 규모 있게 꾸며진 것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억만금을 가진 재벌도 문학을 완결하지 않은 소설가의 문학관을 위해 62억 원을 아무 조건 없이 기부하고 자기 이름조차 빼달라고 하는 경우는 세상에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고집을 부려 제 이름 첫 자「홍」, 남상원 회장 이름 첫 자 「상」을 합쳐 「홍상문화재단」이라 이름 짓고 김홍신 문학관의 역사로 기록했습니다.... 제 호가 모루입니다. 모루는 대장간에서 불에 달군 쇠를 두들길 때 받침 쇳덩인데, 이렇게 인연 공덕을 크게 보았으니 남은 인생을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라는 하늘의 명령으로 알고 정진하여 보답하겠습니다.”

그의 답사는 고향 논산 예찬으로 이어진다. “문과 무를 겸한 사람을 양반이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거학이자 학풍의 선구자이신 우암 송시열 선생, 김장생 선생과 돈암서원, 윤중 선생을 비롯한 큰 선비들의 풍모와 대한민국을 굳건히 지킨 국방의 상징인 논산 훈련소가 존재하는 논산은 정녕 양반의 상징이 분명합니다...... 문학관의 상징인 검정색 동그라미는 제가 만년필로만 글을 쓰는 검정 잉크이고 붉은 동그라미는 제 영혼의 피를 찍어 쓰겠다는 뜻입니다. 저는 죽을 때 만년필을 쥐고 죽겠다는 마음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예부터 이름을 내건 사람보다 뒤에서 온갖 고생을 한 사람들의 정성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수고하고 고생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고맙다고 해야 옳습니다만 상황이 이러해서 훗날 제 글 속에 그 공덕을 낱낱이 적어서 고마운 분들의 이름을 역사에 기록하겠습니다. 고생한 분들은 붉은 동그라미에 그 영혼의 피를 찍어주신 겁니다. 평생 보답하겠습니다.”

 

▲ 1층 작가일대기와 원형무대(난장판)     © 논산계룡신문

 

온몸으로 맞선 ‘인간시장’

 

김홍신의 분신은 “인간시장” 장총찬이다. 한국 최초로 밀리언셀러라는 수식어! 그 소설 못지 않게 흥행을 기록한 게 영화 인간시장이다. 개관식날 3시 문학관 지하에서는 <’89 인간극장4 오! 하나님>을 관람하였다. 진유영 감독이 제작·연출·주연한 영화인데 진감독이 직접 틀어주면서 해설을 겸하였다. 

30년 전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어찌 이런 줄거리가 탄생했고 영화화까지 가능했는지 믿겨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정치범으로 묶였다가 복학한 후 총학생회장이 된 동민은 학내 밀고자와의 결투에서 총찬(진유영)의 도움을 받고 그와 금세 친해진다. 그러나 캠퍼스 내의 검은 마수는 동민의 애인을 강간해서 자살하게 만들고, 결국 동민도 자살한다. 총찬은 이 모든 것에 대한 복수를 숨 가쁘게 진행시켜 나가다가 막판에 칼과 총을 맞는다.

김효천의 ‘인간시장-작은 악마 스물두 살의 자서전’과 ‘불타는 욕망’에 이은 세 번째 시리즈로 진유영은 1, 2편에서도 주역을 맡았다. 총학생회장 동민 역을 맡았던 김종선이 대종상특별부문 신인상을 받았고 흥행도 성공했다. 그러나 진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군사정권의 검열과 방해로 3억이라는 부채를 떠안게 되었다고 한다. 빚쟁이들에 쫓길 때 당시 최고의 원작료을 구가하던 김홍신 작가를 찾아가 통사정하고, ‘22살의 자서전’이라는 제목 대신 “인간시장”이라는 이름의 사용을 승낙받음으로써 인생 대반전하였던 스토리를 쏟아놓는다. ‘89 인간시장’ 덕분에 진유영은 극적인 재기를 하게 된다. 그 과정과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리얼한 스펙터클이다. 그리 술회하면서, 그때 내용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함을 개탄한다. 그러고 보니 30년 전의 풍속도가 “내부자” 같은 영화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게 2019년 현실이다. 

인간시장에서처럼 생생한 콘텐츠를 제공한 김홍신은 사건사고 현장에 기자보다 한밭 앞서갔다. 현장의 삶은, 사회 부조리에 대한 직설적 고발은, 그의 발을 책상에 잡아두지 못했다. 사회개혁 성향의 김홍신은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동시에 사회 활동도 관여하게 된다. 1980년대 중반 고은 시인, 신경림 시인, 이호철 소설가, 이문구 소설가 등과 함께 실천문학운동에 뛰어들어 민주화운동, 인권운동을 펼쳐나간다. 언론과 방송에서 권력층의 부조리한 면모를 거침없이 비판하며 소신을 밝혔다. 국민의 입장에서 권력의 상징인 대통령의 잘못된 행태까지 글과 방송을 통해 지속적으로, 신랄하게 비판해 방송에서는 그 다음날로 출연 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1995년 「개혁신당」의 홍보위원장을 맡았으며 자연스럽게 정치에 입문, 15~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장애인 복지법’, ‘의약분업법’ 제정을 위해 힘쓰고 독립유공자로 위장된 친일파를 색출하는 데 일조했다. 때때로 자신이 속한 당의 뜻에 반하는 활동과 빈곤층‧장애인 등의 사회적 약자를 우선시한 입법·의정 활동 때문에 ‘여의도 장총찬’ ‘상습적 당론 거부자’로 불리기도 했다. ‘사형제도’와 ‘국가보안법’ 폐지에도 앞장선 그는 ‘8년 연속 국회의원 의정평가 1위’ 의원으로 선정되는, 헌정 사상 유례없는 기록도 세웠다.

 

▲ 2층 발해관 입구     © 논산계룡신문

 

이제는 논산, 이제는 백제 

 

아내와 사별 후 주변 멘토들의 권유로 정계에서 은퇴해 본업인 작가의 길로 돌아왔다. 2005년부터 『김홍신의 대발해(전10권)』 집필을 시작해 약 3년간 200자 원고지 1만2천 매 분량의 원고를 썼다. 그는 『문학사상』 2017년 10월호에 실상을 털어놓았다. “3년간 두문불출한 채 만년필 촉 3개가 닳도록 하루 12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매일 원고지 20여 매를 채우며 모두 1만 2천장을 썼다. 7개월 동안 고치고 또 고쳤다. 손과 목의 마비, 요로결석, 불면증, 탈모, 얼굴피부변형, 햇빛알레르기, 신경쇠약, 소화불량, 만성두통 따위에 시달렸다. 죽음의 길로 가는 내 모습을 지켜본 지인은 ‘《혼불》의 작가 최명희 선생이 작품에 몰입하여 완간하고 쉰한 살에 타계했다며 일손을 잠시 놓으라’고 했다. 나는 결연하게 ‘이 소설을 끝내고 죽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시민운동가, 방송 진행자, 정치인,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을 뿐 아니라 문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후 모교인 건국대 석좌교수, 동서문학회의 멘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민주시민정치아카데미 원장 등 다양한 분야에 제자를 양성했다. 청년 ‘장총찬’에서 지혜롭고 신중한 원로 작가가 된 김홍신!

이런 인생역정이기에, 주변에서는 그를 알아보았고 그의 의지를 읽어냈고, 그의 마지막 집필활동을 돕고자 뜻을 모았다. 홍상문화재단의 운영위원장인 송영무 전국방장관은 3가지 운영방안을 제시하였다. 1) 문학관을 지역주민과 함께 숨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 2) 세계문학인도 초청하고 5개국어 번역사업에도 주력하겠다. 3) 장기적으로 운영하려면 수익사업도 병행해야겠다. 

논산 시민 입장에서 매력적인 것은 첫 번째, 문학의 향기를 흡입하는 문화공간일 것이다. 또 하나, 논산에는 유수한 문인과 문학지망생이 많다. 문학관 넓은 평수 어느 한 켠에 논산문인들을 위한 공간이 하나쯤 할애되면 어떨까도 싶다. 현재 문학관 운영진이 밝힌 내용은 다양하지만, 향후 펼쳐질 각종 문학, 문화 행사를 통하여 소통하고 호흡하는 가운데 지역사회와의 공명대가 넓어지면 좋겠다. “수고하고 고생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 속에 논산 문학관 이웃들이 다 들어가면 좋겠다. 

김홍신 문학관의 별칭은 바람으로 지은 집이다. 김홍신문학관 개관에 부치는 이어령 제1대 문화부 장관의 영상메시지로 취재를 맺는다. “이 세상에 바람 본 사람은 없습니다. 몇 십만 년 광년 떨어져 있는 별을 본 사람도 있고요. 몇 만 미터 지하의 바다 밑 산호초를 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람 본 사람은 없습니다. 김홍신 문학관을 개관하면서 우리는 바람을 눈으로 처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오면 열정의 바람, 사랑의 바람 등 우리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모든 바람을 볼 수 있습니다. 바람은 움직일 때 바람입니다. 바람은 멈추면 사라집니다. 그러나 김홍신문학관의 ‘바람의 집’은 바람이 쉬는 곳이며 바람이 일어나는 원천입니다. 바람이 멈추는 곳, 바람을 볼 수 있는 곳, 바람이 불어오는 원천이 되는 곳 ‘바람으로 지은 집’에서 우리는 바람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겠지만 김홍신문학관은 온 세계로 퍼져 나가는 바람의 원점이 될 것입니다. 바람을 보십시오. 바람을 그리십시오. 그리고 바람과 함께 떠나십시오.”

 

- 이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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