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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봉칼럼] 달관한 철학자인 들꽃
기사입력  2019/12/18 [10:09] 최종편집    논산계룡신문

▲ 문희봉 시인, 전 대전문인협회장     ©논산계룡신문

 

풀꽃을 보고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고 노래한 시인이 있다. 비록 들꽃이란 이름을 가졌지만, 참꽃(?)과 견주어봐도 부족한 게 없다. 오히려 더 예쁘지 않을까 생각한다.

들꽃은 누군가의 손에 꺾이지 않고 오래 그 모습을 지니고 있을 때 행복하다. 인간은 누군가의 손길에 인도될 때 행복하다. 친구가 불러주는 생일 축하 노래는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인간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서 사랑의 꽃을 피우고, 들꽃은 이름 없이 살다 가면서도 씨를 흘려 종족을 번식한다.

인간은 사랑하면서도 고독이라는 병을 앓지만, 들꽃은 고독하면서도 대자연의 사랑의 품 안에서 안락하게 산다. 인간은 일생을 외로움에 시달리지만, 들꽃은 제철 서늘한 바람을 즐기며 유유자적을 노래하며 산다.

‘나는 자연인이다.’란 프로그램을 가끔 본다. 등장인물의 연령대가 50대에서부터 80대에 걸쳐 있다. 사회구성원의 일원으로 희망차게 살다가 어떠어떠한 사유로 산속으로 들어가 자연인이 된 사람들이다. 자연으로 돌아갈 때 바닥을 기던 건강 상태가 지금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사회에 있을 때 입은 트라우마도 세월의 흐름과 함께 지워졌다. 얼굴 가득 웃음이 배어 있다. 생기 있는 피부다. 들꽃의 강인함을 그대로 전수 받았다. 

사십 대 초반에 남편을 대장암으로 여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이웃의 젊은 여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비바람 같은 것 모르고 지내다가 갑작스럽게 남편의 빈 자리를 물려받은 여 가장, 세 자녀를 위해 오늘도 식당 일을 위해 이른 시각 현관문을 연다. 이제 중·고등학생인 세 자녀는 그런 엄마를 딱하게 여기고 제 의무를 다한다. 식당에서 별의별 손님을 대하며 자신의 인격 같은 걸 죄다 쓰레기통에 버린다. 기분이 언짢아도 내색하지 않고, 안면에 미소를 띤다. 집에 돌아오면 소금에 절인 배춧잎 신세, 그래도 그 직장을 그만 둘 생각은 없다. 민들레와 같은 삶을 살더라도, 꺾여도 다시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한 번의 포옹이 수천 마디의 말보다 더 낫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바깥에서의 찡그림을 집에까지 가지고 들어올 수는 없다. 그녀가 가난하다고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그녀가 가난하다고 두려움이 없겠는가? 그녀가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 다 안다. 그저 가난해서 미안할 뿐이다.

인간은 들꽃의 고독을 모르는 대신 들꽃은 인간의 슬픔을 모르고 산다. 들꽃은 스스로의 행복조차 모르고 살지만, 인간은 스스로 불행을 한탄하며 통곡한다. 

들꽃이 고독을 이겨내는 철학을 배우고 싶다. 누군가의 손에 꺾이지 않을 때 씨를 흩뿌리며 이름 없이 살다 가는 행복한 들꽃의 고독을 배우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이름은 잘 모르지만 누가 봐주지 않아도 저만치 홀로 피어 있는 작은 들꽃, 화려하지 않아도 외로운 산행길에 잘못하면 밟힐 것 같은, 수줍어도 그리움은 그대로 간직한 채 들꽃이 사람을 닮고, 사람이 들꽃을 닮아 문득 발길 멈추고 함께 있고 싶었던, 그냥 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들꽃처럼 살다가도 봐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고독은 없으리라. 

사람도 곡식에 비유할 수 있다. 한 알의 곡식에도 싹을 틔울 힘이 있는 것처럼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사람에게도 그런 힘이 있어 자연스런 삶이란 싹을 틔우는 것이다. 사람들이 싹을 틔울 수 있는 힘은 바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겠다. 낡을수록 좋은 것은 사랑뿐이다. 진정한 사랑은 소유하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엄마는 자녀들을 사랑하고, 자녀들은 엄마를 존경하고, 그 집은 복사꽃이 활짝 피어 있는 집이다.

자연과 혼인하여 얻은 이름이 ‘자연인’이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자연과 함께 생활하며 자연에게서 삶의 이치를 배우고, 현명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를 전수 받는다.

‘자연인’으로 살며 쌓아 올린 자그마한 돌탑의 생명력을 본다. 모진 풍파 다 이겨내고 의연한 모습으로 자연인과 삶을 같이 하는 돌탑의 평균수명은 수백 수천 년이다. 돌탑 주변의 이름 모를 야생초들의 생명력도 돌탑에게서 전수 받은 것이다. 꺾이지 않고 부러지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과 혼인한 ‘자연인’의 건강은 말이 필요 없다.

밟혀도 일어나고, 꺾여도 다시 일어나는 들꽃에게서 나도 자연의 오묘한 철학을 배우고 영원한 건강과 행복을 향유하고 싶다. 세상을 덮고, 어둠을 덮고, 절망을 덮고, 맑은 바람과 벗하며 사는 들꽃의 고매한 철학을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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