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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야기: 화가와 친구들] 10. 작가 박종갑
이호억 중앙대학교 강사
기사입력  2020/05/13 [14:53] 최종편집    논산계룡신문

▲ 박종갑_바람_나무에 수묵_244x1098cm_2017     ©

 

 

 2004년 이곳은 경인교육대학교 신임교원 임명식자리다. 서른일곱. 화가 박종갑에게 임용장이 전해지는 순간이다. 화가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매순간 치열하고 순수했던 전시의 수고 탓이 아니다. 끝내 아들의 교수임용을 목도하지 못하고 승천하신 어머니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운보 김기창 선생님이 칭찬하던 아들은 겸양지덕(謙讓之德)을 갖춘 한국화단의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행복과 성취를 고대하며, 먼저 떠난 아버지 몫까지 정성을 다해 뒷바라지하셨다. 소년시절, 전주시내의 맛좋은 곰탕집에서 한 그릇의 곰탕을 나눠먹는 모자(母子)의 사투리 섞인 대화는 아름답기만 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구리 료헤이’의 단편소설, ‘우동 한 그릇’의 감동이 이에 비할까? 

 

두 겨울, 완산가 박종갑 작가를 만나다

 

 나는 완산가(完山家) 박종갑 작가와의 첫 만남을 2017년 크리스마스이브로 기억한다. 소복하게 쌓인 눈이 인상적인 날이었다. 마침 부모님께서 건강검진을 위해 서울에 오셨던 차에 삼청동을 함께 거닐며 전시를 보았다. 그때 마주한 완산가의 작품들은 실로 거대했다. 전시장 벽을 가득 매운 목판 위에 농담(濃淡)과 눈발이 서린 묵(墨)의 숲이 펼쳐졌다. 이는 분명 함박눈을 맞으며 현장에서 그려낸 것이리라. 그때만 하여도 나는 화단에서의 교류에 대해 그다지 신경을 쓰지 못하던 때라, 박종갑 작가의 겨울 숲을 기억하며 인사를 드리고 헤어졌다. 

그런 그와 재회를 하게 된 것은 한해가 더 지난 2018년 12월, 또 다른 그의 전시를 통해서였다. 뉴욕에서 지필묵과 한글로 외국인들의 이름을 쓰고 그려주는 프로젝트 보고전시였다. 의아했다. 자기작업에만 매진하는 것이 아닌, 다분히 공적인 성취를 위한 행보였다. 나는 그가 궁금했다.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화단의 선배를 만나서 듣는 옛이야기와 진솔한 조언들, 그리고 어른으로서의 여유가 신선했다. 박종갑 작가는 ‘글 쓰는 지기가 완산가 화실에 놀러왔으니 함께하지 않겠냐’며 전화를 주시곤 했다. 나는 늘 먼저 연락드리지 못해 송구한 한편, 이토록 후배를 챙기시니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완산가는 선배로서, 교육자로서 자신보다 후배들이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비록 부친의 이른 부재로 어머니와 고생한 시절도 있었으나, 부친께서는 생전 화가와 문사를 아끼고 대접하며 덕을 쌓으셨고 어머니께서도 전주에서 화랑을 운영하셨던 이력이 있으셨다. 그림 그리는 이와 글 쓰는 이를 귀하게 여긴 집안의 아들이다. 그의 이타적 행보가 이해되었다. 

 

▲ 논산을 방문한 박종갑 작가     ©

 

▲ 박종갑 작가의 작업실 한켠     ©

 

 

 선배로서의 길

 

급진적 서구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 문명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던 한국화 미술운동 중 하나로 홍익대학교 동양화전공 졸업생 중심의 ‘동풍’전이 회자된다. ‘동풍’전은 수묵기법을 중심으로, 자생적 한국화의 바람을 추구했다. 바로 이 ‘동풍’전의 기획자가 박종갑 작가다. ‘동풍’전은 완산가 박종갑을 비롯하여 김선형, 유근택, 박병춘, 임택, 김민호, 문정화로 구성되었다. 박종갑은 2002년과 2003년, 두 해 동안의 대규모 기획전시를 끝으로 ‘동풍’전을 해체했다. 그는 이후 전시공간인 ‘갤러리 꽃’을 운영하며 기회가 없는 한국화단의 후배들을 위해 헌신했다. 기획의 과정이란 많은 고초와 손해가 따르고 자기 품이 드는 일이다. 그는 자신의 급여 대부분을 사용하며 ‘꽃’을 지켜나갔다. 완산가는 응당 꽃을 피우기 위한 토양이 되기를 자처한다.

작가 박종갑은 부유한 사람이다. 박종갑의 주변에는 친구들이 있다. 그리고 후배들이 있다. 나는 선배님과 중요한 가치를 공유했다. 세계의 벽을 넘어야 한다. 그림을 그린다면 마땅히 좋은 선후배가 될 수 있다.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많은 박종갑 작가는 경희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고 미술대학 학장에 올랐다. 가까운 곳에 좋은 선배가 계셔서 동료애와 따뜻함을 느낀다. 선배님의 뜻을 본받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작업을 위해 정성을 다할 수밖에 없다. 후배들을 지켜줄 수 있는 어른이 될 때까지, 정진할 뿐이다. 

_봄 밤, OCI미술관창작스튜디오에서

 

▲ 이호억 중앙대학교 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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