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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인생박물관] 계룡장로교회 장하자 권사 "피노키오인형극으로 일자리, 봉사, 건강 1거3득"
기사입력  2020/10/22 [23:13] 최종편집    논산계룡신문

[계룡인생박물관] 계룡장로교회 장하자 권사

피노키오인형극으로 일자리, 봉사, 건강 1거3득

 

장하자 어르신을 계룡시노인지회에서 처음 만났다. 기자처럼, 사람들은 그녀의 외모에 깜짝 놀란다고 한다. 큰 키에 날씬한 몸매, 그리고 꼿꼿한 걸음걸이. 뒷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40~50대다. 멋들어진 모자를 곁들인 센스 만점의 스타일리쉬에 환한 미소까지.

“제가 신혼 때 한복을 즐겨 입었는데, 한복을 입고 외출을 하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는 것 같더라구요~” 이렇게 은근 자기를 소개하는 그녀의 인생이야기도 멋들어질 거 같다.


 

일본서 태어나 순천을 거쳐 익산으로

 

장하자 어르신은 부친 장영대 님과 모친 이분례 님 사이에서 2남2녀 중 둘째딸로 1943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당시는 일제강점기였는데 부친이 일본에 직장을 얻어 그곳에서 생활을 했다. 언니와 자신은 그곳에서 태어나 1950년대 초까지 일본에서 살았다.

그런데 모친께서 고향을 무척 그리워하시면서 “내 나라에서 죽고 싶다” 부친께 귀향을 졸랐다. 아버지는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인 전남 순천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잠시 있다가 모친 고향인 전북 익산으로 최종 거주지를 옮겼다.

아무래도 순천보다는 익산이 먹고 살기에 나았다. 부친과 모친은 익산에서 농사를 지으셨다. 그리고 아래로 두 사내 동생을 보았다. 그때만 해도 남존여비사상이 팽배해 있을 때였다. 그래서 남동생 둘은 끝까지 공부를 했지만 딸인 장하자는 남동생들 뒷바라지하며 살림을 도와야만 했다.

“그때는 어려서 집안 형편이 어떤지는 자세히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 기억으로는 아주 힘들게 가난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넉넉한 집안은 아니었어요.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함도 없었습니다.” 당대로서는 비교적 유복한 어린 시절이었다.

 

신앙을 갖게 되고 온 가족을 전도

 

장하자 어르신은 중학교 시절 목사 딸과 단짝 친구였다. 그녀는 그 친구를 따라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부친은 “우리 딸이 교회에 나가면 나도 나간다”고 하셨다. 그만큼 부친의 딸사랑이 대단하셨다고 회고한다.

그렇게 하여 그녀의 부친이 처음으로 교회에 나가 첫 예배를 드린 때가 바로 맥추감사절이었다. 그때 부친께서는 맥추감사 헌금으로 보리 열 가마를 내놓으셨다. 이 이야기를 들은 모친이 몹시 속상해하시자 부친은 “우리 형편에 그 정도는 낼 수 있다”고 하시며 넘어갔다.

모친은 ‘집에 농사일도 바쁘고 일할 게 많은데 한가하게 교회 다닐 시간이 어디 있느냐?’며 아버지가 교회 나가시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셨다. 와중에도 부친 다음으로 언니를 전도하여 교회를 나오게 하더니, 맨 마지막으로 어머니까지 전도하여서 결국 온 가족이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부모님 두 분은 신앙심을 갖고 평생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았으며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들에게 베푸는 사람으로 모든 이웃들이 인정하였다”고 술회한다.

 

 

 

철도공무원과 결혼, 외동딸과 함께

 

1965년도에 철도청 공무원인 차명덕(車明德, 2006년 작고)님을 중매로 만나 결혼하여 경기도 안양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남편은 성실하게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한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1966년도에 둘 사이에서 딸 하나를 두었다. 행복한 신혼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그 딸을 잘 키워 KAIST 박사 사위를 얻었다. 딸은 남매를 두었는데 그 손주들도 모두 KAIST를 나온 수재들이다. 딸 가족은 그녀와 가까운 대전에 거주하고 있고, 가족모임을 자주 갖는다고 한다.

본래는 딸 가족과 함께 살았는데, 남편이 병을 얻어 투병생활을 하면서 한창 공부하는 손주들한테 영향을 줄까봐 가까운 계룡으로 따로 나와 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안양YWCA와 홀트에서 봉사활동 올인 

 

장하자 어르신은 주부로서 딸을 키우며 가정생활에 충실했다. 그런 가운데 교회 권사로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으며, 그 신앙의 행위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40대 중반에 경기도 안양YWCA의 발기인이 되어 발족시켰으며, 그 후 이 단체를 통하여 많은 봉사활동을 주도하였다.

초창기 회원은 50명으로 시작하였으나 곧 100명을 돌파하였고 1년 후에는 3천명까지 회원을 늘렸다. 그녀가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해 그 단체를 이끌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 단체는 산간벽지와 낙도의 어린이들을 초청하여 서울대공원, 동물원, 그리고 서울 구경을 시켜주는 등 여러 봉사활동을 하였다.

홀트아동복지회에서도 활동을 열심히 했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동네사람들은 매일 봉사활동을 하러 다니는 그녀를 보면 “어디 직장을 나가느냐?” 물었다고 한다.

 

 

 

 

 

 

 

 

노인일자리사업 피노키오인형극 프로

 

그녀의 남편이 2006년도에 위암으로 돌아가자 2008년도 개관한 계룡노인복지관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그 슬픔을 이겨냈다. 그녀는 붓글씨처럼 정적인 프로그램보다는 몸을 움직이는 한국무용, 댄스스포츠 같은 동적 프로그램에 더 많이 참여하였다.

10여 년 전부터는 시청에서 실시하는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하여 피노키오인형극을 하고 있다. 이제는 거의 프로급이다. 현재 11명의 어르신이 참여하고 있는데 어린이집, 유치원 등을 방문하여 연 10회 이상 인형극을 공연한다.

이런 활발한 사회활동이 건강관리의 비결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항상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 말고는 따로 하는 건강관리는 없단다. 그녀는 현재 계룡장로교회에서 권사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 또한 “일상 생활에서 필수비타민”이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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