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로고
광고
지역소식정치경제교육문화오피니언사회생활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 찾기
전체기사보기
편집  2021.01.25 [17:40]
문화 >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임의수의 스케치-6]완주 되재성당을 찾아
- 임의수(펜화가, 역사문화유산해설사)
기사입력  2020/11/18 [16:16] 최종편집    논산계룡신문

[임의수의 스케치-6]완주 되재성당을 찾아

우리 근현대사가 담긴 최초의 한옥성당

 

 

양촌면 쌍계사가 있는 작봉산(불명산) 너머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옥으로 지은 되재성당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승용차로 간다면 가야곡면을 지나 완주 화산면 소재지를 거쳐 돌아가야 하지만 양촌면 쌍계사와는 직선거리로 2km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옛날에는 고개를 걸어서 넘어 다녔기 때문에 ‘매우 고되고 힘들다’ 하여 ‘되재’라는 이름의 고개를 넘어야 닿을 수 있었습니다. 화산면을 지나 승용차로 간다 해도 한적한 시골길을 마지막까지 달려야만 하는 곳입니다. 말이 성당이지, 지금은 고산성당 관할의 되재공소로 되어있습니다. 농촌의 인구가 줄어드니 천주교인들 역시 줄었기 때문이지요. 

천주교인들이라면 이곳에서 가까운 천호성지와 더불어 순례코스로 빼놓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한옥으로 지은 성당입니다. 종탑의 지붕 역시 자그마한 한옥의 팔작지붕을 이고 있어 정감이 갑니다.

처음 되재성당이 지어진 시기는 1895년으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성당입니다. 최초로 지어진 성당은 서울 약현성당이며 1893년에 세워졌습니다. 그러니 2년 뒤에 이런 골짜기에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서양식이 아닌 한옥으로 이처럼 멋진 성당을 세운 이유가 자못 궁금합니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당시 천주교인들이 대도시보다도 많았다는 사실이지요. 

되재성당이 있는 전북 완주군 화산면 승치리 되재마을은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든 교우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교우촌입니다. 마을 가장 안쪽의 성당 마당에 들어서면 인자한 얼굴의 성모님과 두 팔을 활짝 펼친 예수상과 성모상이 순례객을 포근히 맞아줍니다.

18세기 중엽, 당시 지식인들로부터 전래된 천주교는 1791년 신해사옥이라 일컫는 진산사건이 일어나면서 일백 년 가까이 탄압을 받기 시작합니다. 당시 진산면은 전라도 관할이었기 때문에 사건의 주모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은 전주 감영으로 끌려가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그 후 이들이 순교당한 자리에 지은 성당이 전주의 전동성당인 것이지요. 그 뒤부터 수많은 천주교인이 그들의 신앙을 버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오박해, 병인박해 등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됩니다. 

무릇 정치란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함께 나누는 것’이어야 했지만 조선 후기 역사는 전정, 군정, 환곡 등 3정의 문란 등으로 백성들은 탐관오리의 수탈에 더욱 피폐한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정치는 없었고 가혹한 통치만 난무한 시기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맹목적인 충성과 효도, 조상의 제사는 반드시 지내야만 했던 것이지요. 

오늘날에도 종갓집이나 장남에게는 시집가기를 꺼리는 처자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물며 당대는 어떠했으랴? 하루하루를 연명하기도 벅찬 살림에 격식을 차려 조상의 제사까지 지내야 했던 현실의 비참함, 이를 타파하고자 천주를 믿으며 신지식인이라 부를 수 있었던 일부 사대부들이 조상의 제사를 거부하고 신주를 불태웠던 것입니다. 많은 백성들 또한 그들을 따랐던 것이지요. 새 세상을 열망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가는 가혹하고도 혹독했습니다. 하나뿐인 목숨과 맞바꾸는 일, 그렇다고 이를 따르던 수많은 백성은 중도에 포기하고 물러섬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수천 명이 학살당하고 생매장당하면서도 그들의 고귀한 신앙만큼은 지켜내고자 하였지요. 

 

 

이렇게 충청도와 전라도에 남아 있던 천주교인들이 그들의 신앙을 지키고자 첩첩 산골로 모여서 움막을 짓고 교우촌을 만들어 공동체 생활을 한 곳이, 여기 승치리 되재 마을입니다. 그러니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성당이 이곳에 지어진 것은 연유는 자명하다 할 것입니다. 사실 하루하루를 연명하기도 힘든 당시 사정을 고려하면, 이들에게 성당을 짓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겠지요. 그렇기에 이곳에서 아주 가까운 논산 양촌면 쌍계사의 전각을 매입해 이곳으로 옮겨와 일 년여에 걸쳐 터를 닦고 성당을 세웠던 것입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은 최초의 한옥성당이었지만 그것도 잠시,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인민군들이 군 막사로 사용할 우려가 있다고 하여 국군에 의해 불태워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 다시 복원한 것이지요. 

성당 뒤쪽 양지바른 산 언덕에는 당시 이곳을 중심으로 헌신적으로 활동하다 돌아가신 두 신부님의 묘소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워낙 열악한 환경에서 선교 활동에 전념하다 보니 불과 35세와 28세에 돌아가신 신부님들입니다. 

이처럼 되재성당과 그 주변 천주교 관련 성지는 처절했던 조선 후기 우리 조상들의 피의 역사였고 순교지였기에 천주교인들만 아니라 이 땅을 사는 우리 모두의 순례길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 임의수(펜화가, 역사문화유산해설사)

 

ⓒ 주식회사 계룡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관련기사목록

화지중앙시장, 홍보대사 ‘영화
가장 많이 읽은 기사
[기고] '착한 임대인 세액공제 제도'를 아시나요? / 논산계룡신문
계룡시보건소, 비대면 금연클리닉 프로그램 운영 / 논산계룡신문
계룡시, 상수도요금 3월까지 추가 감면 / 논산계룡신문
계룡시, 2021년 면‧동 연두순방 취소 / 논산계룡신문
계룡시, 코로나19 특별방역 대책회의 개최 / 논산계룡신문
계룡소방서의용소방대연합회, 이웃사랑성금 200만원 기탁 / 논산계룡신문
충남교육청, 2021년 예산 조기집행 확대 추진 / 논산계룡신문
충남교육청, 찾아가는 ‘원격수업 현장 지원단’ 운영 / 논산계룡신문
충남도의회 의장단·상임위원장단, 도지사·교육감·충남경찰청과 간담회 / 논산계룡신문
계룡시, 중소기업 박람회 참가비 선착순 지원 / 논산계룡신문
광고
개인정보취급방침회사소개광고/제휴 안내청소년보호정책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주)계룡일보 본사 | 충남 계룡시 서금암2길 19-3
대표전화: 042-840-5114 | 팩스: 042-840-5113 | e-mail: ngdnews@naver.com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충남 아 00072 | 주간신문 등록번호: 충남 다 01288 | 등록일: 2010-04-29
발행인/대표이사: 전영주 | 편집인: 전영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전영주 | 인쇄인: 이훈무
당사의 기사를 동의 없이 링크, 게재하거나 배포하실 수 없습니다.무단 사용하는 것은 저작권법에 저촉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2010 Gyeryongdail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