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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인생박물관] 윤영규 계룡시노인회 금암분회장 “계룡에서 글씨와 그림, 나누어 드려요~”
기사입력  2020/11/25 [09:59] 최종편집    논산계룡신문

[계룡인생박물관] 윤영규 계룡시노인회 금암분회장

“계룡에서 글씨와 그림, 나누어 드려요~”

 

대한노인회 계룡시지회 윤영규(尹榮圭, 82세) 금암분회장은 하루도 빠짐없이 먹을 흠뻑 묻힌 붓을 잡는다. 쓰고 그리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그를 만나 글씨와 사군자와 함께 한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본다. 전남 무안에서 농사꾼으로 태어나 우연찮은 기회에 한문과 서예 선생님이 되기까지 그의 인생 드라마는 흥미진진하기만 하다.


 

 

농사지으면서도 주경야독

 

윤영규 회장의 고향은 전라남도 무안군 해제면이다. 찻길보다는 뱃길이 더 많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과 같은 육지이다. 그는 그곳에서 농사를 짓는 가난한 빈농의 8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그가 19살 때 병환으로 일찍 돌아가셨다. 가뜩이나 어려운 집안에 가장까지 일찍 여의였으니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집안의 경제적 어려움은 더했고, 그래서 그는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21세 때 두 살 많은 지금의 아내(이순례 여사)와 결혼을 했다. 모친과 동생들, 그리고 아내가 낳은 자식들까지 모두 그가 책임져야 할 식솔들이었다. 그는 남의 농사를 지으며 40세까지 그렇게 고향에서 어렵게 살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꾸준히 글씨를 썼다. 초등학교만 졸업했지만 그는 마을에 있는 서당을 다니며 한문을 공부했다. 14살부터 17살까지 3년을 다녔다. 그 이후에도 계속 어깨 너머로, 또 책을 구해 읽고 쓰며 한문을 꾸준히 연마했다.

그래서 그는 그 인근마을의 모두 대소사에 불려다니며 기성명(記姓名) 봉사를 했다. 기성명이란, 지금으로 얘기하면 방명록을 대신 적어주는 일이었다. 사람들의 이름을 한자로 적어주다 보니 자연히 많은 한자를 익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체 또한 날로 유려해졌다.

 

 

 

 

 

 

 

 囊中之錐, 서예학원에서 발탁

 

그는 농한기인 겨울에는 그의 누이가 살고 있는 서울에 올라가 지내곤 했다. 한 번은 그의 누이 집을 방문하면서 자신이 쓴 글씨를 병풍으로 만들어 가지고 올라갔다. 그것을 손보려고 표구사를 들렀다. 그곳 사장이 병풍을 보고 놀라워하며 하는 말이 “이 글씨의 주인공이 누구냐”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썼다고 하자, “이런 글씨를 가지고 농사를 짓느냐?”며 표구사 주인이 놀라워했다고 한다.

그는 서울 종로2가에 있는 서예학원에 접수를 하고 서예를 제대로 한 번 배워보려 했다. 그곳에 한 일주일 쯤 나갔을 때 한 사람이 한자 초서 찍은 사진 한 장을 들고 와서는 학원 원장에게 그것의 해석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어깨 너머로 그것을 본 그는 “내가 한 번 해보겠다” 하였고, 그 해석을 멋지게 해주었다. 이어서 그 초서를 정자로 써주었다. 그런데, 그 사진을 가지고 온 사람은 문화공보부 직원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학원 원장이 그에게 “서울에서 같이 살며 학원의 한자 선생을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이런 우연찮은 연유로 그는 서울에서 서예학원 선생이 되었다. 이후 자신이 직접 학원을 운영하는 등, 서예와 함께 하는 제2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때가 1981년 그의 나이 42세 때였다. 2005년 은퇴하여 계룡으로 내려올 때까지 서울에서 서예학원을 운영했으니 25년이란 세월을 한자와 더불어 산 셈이다.

그의 한문과 서예 실력은 발군(拔群)이었다. 자칫하면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동네 대소사에 나가 기성명 하는 것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을텐데, 늦게나마 제 길 찾게 되어 다행이 아닐 수 없다.

1993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한자 능력검정고시가 실시되었다. 그때 그는 이 대회에 나가 당당히 수석으로 합격하기도 하였다. 그밖에도 각종 휘호대회, 서예대회, 서화대회 등에 나가 수상하였다. 이후에는 각종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하기도 하였다.

 

 

 

인생3막, 계룡에서 재능기부로

 

그는 아내 이순례 여사와의 사이에서 1녀 3남을 두었다. 자식들은 모두 장학금을 타가며 알아서 스스로 공부들을 해나갔다. 그는 “자식들 키우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고 말한다. 장남은 전남에서 교장으로, 둘째는 광양제철소에, 셋째는 이공학박사로 태평양화학에, 그리고 딸은 군인가족으로 함께 계룡에 살고 있다. 그가 은퇴하고 계룡으로 내려온 것은 딸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어머니는 96세까지 장수하셨다. KBS, MBC 등 방송국에서 5대가 함께 사는 가정이라고 취재 나올 정도로 다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이는 모두 “한문공부와 서예를 하면서 마음수양을 한 그의 온화한 성품으로 가족들을 부양한 결과”라고, 그 가정을 아는 사람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그는 2005년도에 계룡으로 내려와서 이틀 만에 시청으로 최홍묵 시장을 찾아갔다. 자신을 소개하며 “이 지역에서 주례를 서주거나 서예와 사군자 등을 교육하는 봉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기부하고 지역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고자 결심한 바여서였다.

그는 현재까지 15년째 변함없이 이 봉사를 하고 있다. 계룡시의 모든 노인회에서 관광차 출발하는 버스에 그 인원수만큼 사군자 그림을 그려서 나누어 주고 있는 것이다. 관광가는 어르신들은 멋진 사군자 그림까지 선물로 받으니 더 흐뭇한 문화 관광이 되어 왔다.

그는 공주, 세종 등 충남 지역과 대전의 비문을 해석해주거나 써주는 일도 기꺼이 하고 있다. 그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간 계룡시 노인대학장을 역임한 바도 있다. 이렇듯 그는 우리 지역을 위해 자신이 가진 재능을 가지고 열심히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요즘 밖에 나가면 “마주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대부분은 내 그림이나 글씨를 선물 받은 사람들이라서 대부분 나를 알아본다”고 자랑스러워한다.

요새도 그는 하루에 90분의 걷기 운동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글씨 쓰고 사군자 치면서 보낸다. 그러느라 그는 아플 틈도 없단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들은 모두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인터뷰를 마친 필자도 글씨와 사군자를 선물로 받았다.

“작품 전시회를 왜 안 하는지” 필자의 질문에 “이렇게 나누어주는 것이 전시회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환하게 웃으면서 말을 잇는다. “서울에서 내려올 때 화선지를 한 차 가득 싣고 내려왔는데 그거 다 떨어질 때까지 그려서 나누어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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