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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인생박물관] 김정수 대한노인회 계룡시지회장
받으면서 줄 줄도 아는 노익장, 계룡시노인회
기사입력  2021/01/14 [09:48] 최종편집    논산계룡신문

[계룡인생박물관] 김정수 대한노인회 계룡시지회장

받으면서 줄 줄도 아는 노익장, 계룡시노인회

 

2021년 신축년 새해를 열면서 새로운 업무가 시작되는 날, 대한노인회 충남 계룡시지회를 찾았다. 김정수 계룡시지회장으로부터 코로나19로 힘들었던 지난해를 돌아보고, 올 한 해의 계획 이모저모도 들어본다.


▲ 김정수 노인회장     ©

 

노인대학 30명에서 120명으로

 

“지난 한 해는 기다리기만 했습니다. 코로나19가 곧 끝날 줄 알았죠. 그렇게 한 해 내내 끌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 봄이 지나면 좀 나아지려나 했더니만 광복절 이후에 더 확산되고, 또 가을이 되면 좀 나아지려나 했더니 더 확산되고, 그렇게 한 해를 기다리다가만 보냈습니다. 올해는 백신이 개발되어 보급된다고 하니 하반기쯤에는 나아지겠죠.”

그는 2018년 계룡시지회장으로 선출된 이후 노인대학을 활성화하고 2019년 노인운동회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30여 명 정도의 인원만이 참석했던 노인대학이 120명 참석하는 노인대학으로 바뀌었다. 노인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를 선정하여 그에 맞는 강사 섭외에 신경을 쓴 결과이다.

“어떻게 하면 노인들이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을까? ‘이런 걸 하니 무조건 나와라’ 하면 참여도가 떨어집니다. 그래서 노인들이 흥미를 갖고 재미있어서 제 발로 나오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지요. 갈 곳도 마땅치 않고 주로 집에만 있는 노인들에게 나들이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명승지 탐방과 같은 나들이 겸 강의 프로그램을 노인대학에 접목시켰습니다. 호응이 무척 커서 그 인원이 120명까지 늘어났지요. 작년 노인대학의 계획을 200명까지 잡아놓았는데 그만 코로나 때문에 모든 것이 중단되어 무척 아쉽습니다.”‘지금도 많은 노인들이 하루빨리 노인대학이 재개되기를 고대하고 있다’면서 재개 의지를 피려한다. 

 

추억운동회 소환으로 계룡시 떠들썩

 

노인대학과 함께 가장 큰 호응을 얻었던 것은 2019년 노인의날 기념으로 개최했던 운동회다. 계룡시에는 총 36개의 경로당이 있는데, 이 운동회에는 계룡시 30개 마을에서 참가했다. 참가인원만 1천 명이 넘었으니, 계룡시 전체 축제 같은 운동회였다.

“옛날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마을잔치로 벌였던 시골 초등학교 운동회 같았습니다. 추억의 운동회지요. 이는 단지 운동회 날 하루만 있는 행사가 아니라 모여서 회의하고 계획하고 준비하는 전 과정을 노인들 스스로 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보통 노인들 행사라 하면 오라 해서 먹이고 선물 하나씩 쥐어주면 끝나는 거 아닙니까? 우리 운동회는 그렇게 안 했습니다. 각 경로당 별로 음식 장만하는 등 노인들이 주체가 되어 준비하고 실시한 주체적 마을잔치였습니다.”

이 운동회는 규모가 작은 경로당은 이웃 경로당과 합쳐 모두 21개 팀으로 만들어서 참가하였다. 공굴리기, 모래주머니 던지기, 모래가마 오래 들기 등 모두 다섯 개 종목의 대항경기를 했다. 무엇보다 한 종목 이상 할 수 없도록 하여 모든 노인들이 골고루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

또 3군본부의 지원을 받아 군악대가 연주하고 군인들과 지역봉사자들이 나와 행사장 곳곳에서 안내를 맡았으며 가수들을 초청하여 공연도 보고 푸짐한 경품 추첨도 하였다. 한마디로 계룡시 온마을 대축제였다.

“처음에 이런 운동회를 계획했을 때는 노인들의 안전사고를 우려해 모두 난색을 표명했었죠. 그러나 막상 하고 나니까 모두들 너무 즐거웠다고 환호하고 또 그것을 준비하며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성취감을 느꼈다고 모두 하나같이 말합니다. 끝나고 나니 아쉬움을 안고 내년을 기약하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2020년에도 10월 노인의날 행사 대신 제2회 운동회를 준비했으나 코로나 때문에 열지 못하게 되어 무척 아쉽다고 김회장은 말한다. ‘대도시는 사람들 간의 유대감 형성이 어렵지만 우리 계룡시는 도시이면서도 그 규모가 작기 때문에 이런 운동회와 같은 지역행사를 통해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고 말하며 올해 운동회 개최 준비 의지를 드러낸다. 

 

2021년, 즐겁고 신명나는 한해로

 

“우리나라 평균 수명이 84세라고 합니다. 그런데 건강수명은 64세입니다. 그러니 아프면서 20년을 산다는 얘기지요. 저는 건강은 육체건강 50%, 정신건강 50%라고 생각합니다. 100% 건강하기 위해서는 운동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얘기지요.”

그는 모든 노인들이 즐겁게 웃고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끊임없이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인대학과 같은 교육의 장을 빌어 더 많은 노인들이 참여하여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운동회 같은 잔치의 자리도 만들어 모두 화합하고 신나게 즐기는 자리도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래서 더욱 이 코로나19가 빨리 종식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코로나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계층이 노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경제적 피해만을 생각하는데 그것은 숫자로 나타나는 피해일 뿐입니다. 노인들은 밖에 나오지도 못하죠, 그러니 모이지도 못합니다. 인터넷 등 SNS 사용도 못하니 그저 방구석에서 지내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습니다. 가뜩이나 우울한 나이인데, 더 우울해지는 거지요.”

그에게도 이를 타개할 묘책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작년 한 해 기다리기만 했는데, ‘이제는 코로나를 무시해버리고 한 번 해볼까?’하는 발작적 오기가 생기기도 한단다. 그 정도로 그에게 기다림의 시간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본래 가만히 앉아 생각만 하는 성격이 못됩니다. 생각하는 것을 행동으로 해야 하고, 말하는 것보다는 실행하는 것이 더 몸에 배어 있습니다. 올해 백신이 보급된다고 하니 하반기부터는 좀 나아지겠죠. 차분히 그때를 준비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서로 만나거나 모이지 못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노노케어(노인과 노인을 연결해주어 서로 보살피는 프로그램)’와 같은 복지 프로그램으로 전화 등 비대면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도 예산이 부족하여 많은 봉사자를 모집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정의로운 노인, 밝아지는 사회’

 

계룡시 금암동에 위치한 대한노인회 계룡시지회 건물 현관 위에 큼지막하게 걸려 있는 문구인 <정의로운 노인, 밝아지는 사회>  이는 2018년 계룡시지회장으로 김정수 회장이 선출되었을 때 내건 노인회 슬로건이다. 김정수 회장은 그 슬로건과 딱 들어맞는 인물이다. 그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나서는 성격이다. 그래서 척을 지고 사는 사람도 간혹 있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이 사회의 어른으로서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외친다.

“관계가 어그러질까봐 좋은 말만 해서는 안 됩니다. 아닌 것은 반드시 아니라고 말해야 합니다. 서로 얼굴을 붉힐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을 짚고 넘어가는 사람이 있어야만 이 사회가 조금이라도 밝아집니다.”

그는 방관자와 기회주의자들이 이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라며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누차 강조한다. 노인이라고 해서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올해 코로나가 종식되고 계룡시 노인들이 건강하게 모여서 으쌰으쌰 즐겁고 행복하게 지낼 것을 그는 기원하며 새해 첫날 인터뷰를 마쳤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그 아버지에 그 아들

도곡리를 삶의 향기로 채웠던 향곡(香谷) 김영천과 그 아들 김정수

 

▲ 김영천 옹 생가     ©

 

 

김정수 지회장은 1939년 9월 12일((음)1939.7.29) 도곡리에서 태어나, 도곡초등학교-연산중학교-강경상업고등학교를 거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서울시 관악구청에서 근무를 하였고, 관악구 봉천9동‧봉천7동‧봉천4동장을 역임했다. 1996년 서울생활을 마감하고 고향인 도곡리에 낙향하여 도곡1리 경로당회장과 계룡시 체육회 바둑협회장을 역임하였고, 2018년 3월 9일 제9대 대한노인회 계룡시지회장에 당선됐다. 김정수 회장은 서울에서 만난 부인 한혜자씨와 사이에 3남 1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됫방골 대지주였던 향곡(香谷) 김영천 

 

김정수 노인회장을 이야기하면서 그의 부친인 향곡(香谷) 김영천 옹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도곡리의 예전 이름은 됫방골이였는데 곡식 풀 때 쓰는 됫박과 어감도 비슷하고 숨겨져 있는 동네 같이 옴팍 들어간 모양도 비슷하다. 150여 가구가 살던 도곡리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김정수 노인회장 1명뿐이었다. 당시 아침 일찍 도곡리 집을 떠나 10리길을 걸어 광석역(현 개태사역)에 도착해 강경까지 기차를 타고 통학하였다.

됫방골 이 동네 일대 대부분이 향곡 김영천 씨의 땅이었다고 한다. 작년에 조성된 계룡시어린이감성체험장(구. 도곡초등학교)이 김영천 씨의 땅이었고, 동네를 가로지르는 길도 사유지를 내주어서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일제시대 때 지금의 서울법대 전신인 경성법정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말을 타고 다녔던 대지주가 원칙대로만 살다가 가난을 접하게 되었다.

해방 후 이승만정부 때 토지 개혁이 단행되었다. 그당시 대지주 대부분은 그 정보를 미리 알고 소작농 계약을 파기하고 본인이 직접 경작하는 것으로 해 놓았다가, 토지 개혁령이 발동하자 모두 다 자작농으로 신고한 것이다. 그러나 법과 원칙을 근본으로 여기고 살았던 김영천 씨는 이런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 풍요가 가난으로 바뀌면서 9남매는 학비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역사의 아이러니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6.25가 터지면서 농사지을 땅마저 빼앗겼던 소작농들이 내심 앙심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인민군 치하에서 땅 주인을 살해하는 비극을 이땅 곳곳에서 자행했던 것이다. 법과 원칙에 의한 그의 삶이 결국 그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다.

 

우물과 공동목욕탕, 고인이 축구했던 마을공동체

 

김영천 씨 자택은 계룡에서 사계고택 다음으로 큰 집이었다. 그간 잘 돌보지 않아서 흙담도 허물어지고 사랑채도 남아 있지 않다. 이러한 고택의 소슬대문 자리 옆에는 아직도 우물이 그대로 있다. 우물이 있는 쪽에는 담을 헐어서 동네사람들이 물을 길러갈 수 있도록 하였다. 마을 공동목욕탕 시설도 설치하고 문맹퇴치를 위하여 야학도 운영하였다고 고 김영천 씨의 묘비문에 쓰여 있다.

1903년 양촌면 도평리에서 출생한 고인은 19세 때 아버지와 사별한 후 상경하여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1929년 경성법정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당시 일제 치하에서 관직을 거부하고 독립운동에 간접적으로 참여하였다. 최고학부를 나온 당대의 인재가 경성의 모든 일들을 마다하고 농촌인 고향을 선택하여 고향 주민의 가난과 문맹을 퇴치하고자 지역사업에 앞장섰다.

무엇보다도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하여 사적으로는 사랑방에 야학당을 운영하였다. 공적으로는 학교터를 기증하여 간이학교를 설립하였고 이후 도곡국민학교로 승격시켰다.

학교는 폐교되었지만 고인이 조성했던 마을 안길과 저수지 등은 지금도 건재하다. 1935년, 고인은 마을 안길을 조성하여 지금의 장자교 부근에서 도곡기도원 가는 길까지 직선으로 신설 또는 확장하여 지역민에게 편의를 제공하였다.

 

▲ 향곡(香谷) 김영천 옹     ©

 

▲ 김영천 옹 졸업사진     ©

 

▲ 송덕비     ©

 

▲ 하상명저수지 앞 김영천옹 공적비     ©

 

 

전국최초 공공근로사업

 

1939년 기묘년 흉년은 처참한 형국이었다. 온 동네가 기아로 허덕이자 김영천 씨는 일을 벌인다. 굳이 필요가 없는 집 뒤쪽에 담장공사를 시작한다고 동네사람들에게 알렸다. 누구라도 왔다가 조금이라도 일을 하고 가기만 하면 하루 일당의 노임을 지급한 것이다. 그냥은 나눠줄 수 없기에 궁리해낸 춘궁기 취로 사업이었다. 공공취로사업은 미국의 뉴딜 정책이나 일제 강점기 양촌의 어느 면장도 실시했지만, 사비를 털었다는 점과 생산성을 따지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다르다. 성경에 보면 아침부터 일한 사람과 해질 무렵이 되어 나온 사람에게 동일한 품삯을 지급하는 비유가 나오는데, 김영천 씨의 공사는 비유가 아닌 실화이다. 

그렇다고 마냥 선심만을 썼던 것은 아니다. 1940년대에는 한발로 인한 흉년을 막기 위해 도청에 호소하여, 논산에 배정된 수리시설 예산을 도곡리로 유치하였다. 그 결과 4개소의 소류지를 확보하였다. 그 중 큰상멩이 저수지는 개인토지를 정씨종중 토지와 교환하여 기증함으로써 수리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런 공사는 공공사업이었으므로 생산성이 우선하였다. 지금처럼 포클레인이 들어가서 뚝딱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웅덩이에서 한삽 한삽 떠낸 흙을 운반하여 뚝방 쌓는 과정은 일당제가 아니라 실적제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김영천 씨는 1970년대 새마을사업을 1930년대부터 발상하고 시행했던 것이다. 이런 공공근로사업은 그 후 이어진 노임살포사업, 취로사업, 일자리 창출 사업 등의 전신이라 할 만하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그 아버지에 그 아들

 

고인은 경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산하의 모든 관직을 거부하였다. 고향에 내려와 살면서 회덕에 있는 처남에게 군자금을 지급하는 등 독립운동에 간접적으로 참여하였다. 1945년 조국의 해방 이후 건국 사업에도 일조를 하였으며, 주변의 성원에 따라 민의원(현재의 국회의원)으로 국정에 진출코자 선거에 나왔으나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 아들인 김정수회장도 서울 봉천동에서 10여년 동장을 하다가, 무소속으로 구의원 출마를 했지만 역시 고배를 마셨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체질은 아들에게도 그대로 흘러왔다. 주변에서 억울한 사람이 생기면 무심히 넘기지 못하고 함께 분개하며 대책 마련에 참여한다.

김영천 씨는 평생 '자선의 삶'으로 일관해 오다가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김정수 회장은 “아들 된 입장에서 볼 때 아버지의 삶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일찍 떠나신 거 같다.”고 술회한다. 돌아보면 주변에서 김영천 씨의 은혜를 안 입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는데, 막상 본인의 살림이 곤궁해 지니까 인간적인 면마저 달라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다소간 회의를 느꼈을 것이다.

김영천 씨는 살아생전 4군자를 주로 벗 하였는데, 국전에 2번 입선을 하고 한 번은 특선 까지 하였다. 그 작품의 흔적들도 흑백 사진으로만 남아 있지만, 그의 생전 흔적은 무엇보다 도곡초등학교 앞에 마을주민이 세운 송덕비와 학교 동창회에서 세워 놓은 기성회장비이다. 그리고 또하나는 하상명저수지 앞에 있는 기념비이다.

하상명저수지의 공적비는 당시에 김영천 씨가 “그런 걸 뭣하러 세우냐?”면서 저수지 속에다 밀어 넣은 것인데 최근 저수지 개수공사에서 나오면서 제자리에 세워둔 것이다. 김정수 회장은 본인의 버킷리스트의 하나로 부친의 일대기 집필을 손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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