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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기획-계룡30년 역사의 발자취] 이덕재 유동1리장(전 공공기관유치위원장)
계룡출장소가 계룡시로 승격하기까지, 기나긴 터널 통과하며

기사입력  2021/10/12 [16:59]   논산계룡신문

[집중기획- 계룡 30년 역사의 발자취 2] 이덕재 유동1리장(전 공공기관유치위원장)

계룡출장소가 계룡시로 승격하기까지, 기나긴 터널 통과하며

 

계룡시에는 장기집권(?) 중인 이장이 둘이다. 두 명 모두 계룡출장소 시절부터 이장 업무를 맡고 있다. 하나는 엄사12리 박인철 이장, 또 하나는 유동1리 이덕재 이장이다. 

이덕재 이장은 2003년 2월부터 유동1리에서 이장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민선3기에는 ‘공공기관유치위원장’을 지내면서 건강관리공단 출장소와 세무서 민원실 등을 개소하였다. 차제에 본지는 이덕재 이장을 만나 계룡의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이장님은 계룡시 개청을 위해 [신도시발전협의회]의 사무국장과 부회장으로서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당시 신도시발전협의회 일들을 정리해 주시겠어요?

 

620사업이 6년간의 공사 끝에 1989년 8월 준공되었습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3군본부 제막식 행사에 참석하여 “계룡대”라 명명하고, 신도시 명칭도 “계룡시”로 하면 좋겠다고 말해, 이때부터 계룡시 태동이 시작된 것으로 보야야겠죠. 그리고 1990년 2월 27일 계룡출장소가 개소했습니다. 그러나 IMF로 인한 국가재정형편 등으로 신도시 건설이 발목을 잡히고 있었습니다.

[신도시발전협의회]와 계룡출장소는 무엇보다도 계룡시 설치 붐 조성에 앞장섰습니다. 우선 2001년 전국체전을 충남도에서 하였는데, 이때 사용하던 마스코트를 개조해 “계룡특례시를 향하여”라는 머리띠를 마스코트 머리에 둘렀죠. 그리고 홍보물과 계룡소식지, 현수막, 홍보탑 등을 설치하여 “특례시가 왜 되어야 하고, 시가 되면 무엇이 좋아지는지?”를 이해하도록 하여 주민들 스스로 동참하도록 홍보를 했습니다.

또한 지역주민들과 연대감을 조성하기 위하여 신도시발전협의회를 비롯해 기업인연합회, 종교계, 각 사회단체장과 지도층 등 각계 각층과 함께 2월 19일 “시민궐기대회”를 가졌습니다. 엄사광장에서 개최된 시민궐기대회에는 약 천여 명 이상의 시민들이 참석했으며, 김용호 발전협의회장의 인사로 시작되었지요. 그날 궐기대회에서 당시 최홍묵 두마면 의원이 건의문을 낭독하였고, 저의 구호삼창에 이어 시가지를 선두에서 행진했습니다.

행자부나 국회에서는 “3군본부인 계룡대는 가만히 있는데, 왜 출장소에서만 시를 만들어 달라느냐?” 따지는 바람에 ‘계룡대’를 정면 돌파하기로 작전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그래서 그 참에 육·해·공군 참모총장의 지지 서명을 받기로 작정하고 먼저 육군본부부터 시작하였고, 천신만고 끝에 육군참모총장 건의문이 국회의장에게로 발송되었습니다.

 

행자위 법안소위원회 통과에 ‘1등공신’이라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계룡시 설치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행정자치위원회 상임위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행자위 법안심사 소위원회를 우선적으로 통과해야 하는데, 이들의 결정에 계룡시의 운명이 달렸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위원장은 포항의 이병석 의원이고 소위원회는 광주의 전갑길 의원, 인천의 민봉기 의원, 대구의 이주영 의원, 홍천의 유재구 의원, 남원의 이강래 의원 등 총 6명으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이 중에는 부정적인 의원도 있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의원도 있었지요.

최홍묵, 김성중, 이정기, 이한영, 저는 출장소 박용복 주사, 나상록 실장 등과 함께 김용환 이장 봉고차로 여섯 명 의원의 의원사무실, 지역구, 후원의 밤 등을 끈질기게 찾아다녔습니다. 그 중에 홍천의 유재구 의원은 “강원도까지 오셔서 식사도 못하고 가시면 안 된다”며 식사까지 챙겨주는 고마운 일도 있었지요.

행자위 법안소위원회가 열리던 2003년 4월 17일은 “계룡시 설치에 관한 특별법안”이 국회에서 처음 심사를 받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그날은 지역주민들도 30여 명 이상 버스를 타고 국회에 상경했죠.

그러나 “다음 6월 임시회까지 행자부의 의견을 서면으로 보고하라”고 하며 심의도 “6월에 가서 다시 한다”며 끝났고 말았어요. 6월로 연기된 점은 아쉬웠으나, 국회 분위기가 행자부에서만 찬성하면 무난히 통과할 수 있다는 확신을 받게 되었죠.

 

5월 17일, 마침내 신임 김두관 행자부 장관과 면담이 이뤄졌어요. 계룡출장소 나상록 실장은 최홍묵 논산시의회 의장과 신도시발전협의회 김성중 회장, 저, 이정기 사무국장, 그리고 이사 2명 등 총 6명과 함께 참석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620사업 이후 역대 대통령이 신도시 건설과 시 설치를 약속하였다”며 “정부의 약속사항을 꼭 이행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최홍묵 의장은 “논산시민들도 계룡시 승격을 적극 지원하며, 논산시 의회에서도 특위를 구성하여 적극 지지하고 있다”며, “계룡시 승격은 두 지역의 공동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그 당시 이창구 논산시연합번영회장 등 몇 명의 논산시 주민들이 심대평 도지사와 간담회를 갖고 “계룡시가 설치되면 논산시 면적 축소, 인구 감소, 지방세·국세 등 예산 규모 위축, 상월·벌곡 등 인접지역 흡수통합을 우려”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에 심지사는 “이는 행정을 모르는 단편적인 생각”이라며, “논산시와 계룡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상생의 길을 모색중인 만큼 반대운동을 중지해 줄 것”을 요청했어요.

그리고 [신도시발전협의회]와 [논산시번영회] 간에 원만한 협의와 임성규 논산시장의 “충남의 거시적인 발전을 위해 대승적인 차원에서 적극 협력하겠다”는 언론 보도 이후, 두 지역의 갈등은 해소되었습니다.

 

 

 

 

2003년 6월 19일 행자위 소위원회 통과

 

2003년 6월 18일 오후 3시, ‘행자위 법안심사소위원회’가 개최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이날 30여 명의 [신도시발전협의회] 회원과 지역민들도 낮 12시쯤 상경해 국회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뒤 곧바로 국회의사당 3층에 있는 행자위 회의실을 찾아 초조하게 기다렸죠.

3시에 소위원회가 개최되었으나, 우리 법안은 후순위로 밀려 논의조차 못한 채 밤 10시쯤 재차 소위가 열려 무거운 분위기 속에 자정을 넘어 19일까지 이어졌습니다. 이후 새벽 3시쯤 후순위로 밀렸던 법안이 상정돼 1시간 동안 재심의에 들어가 새벽 4시쯤 회의가 모두 끝났죠.

이때 법안 발의자인 천안 전용학 의원이 이명수 부지사, 정동기 출장소장, 나상록 출장소 실장, 최홍묵 의장, 김성중 발전협의회장을 위원장실로 불러 “오후 2시 다시 소위를 개최할 예정이니 내일 아침까지 수정 발의할 수 있도록 보완사항을 고쳐오라”고 요청했하더군요.

당시 이명수 부지사와 정동기 소장, 나상록 실장, 박용복 주사, 박병희 주사 등 5명은 인근 여인숙에서 날을 꼬박 새워가며 대안을 만들었답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행자위 소위의원들이 회의 시작하기 전에 협의한 결과, 당초안대로 하기로 하여 날을 꼬박 새워가며 만든 대안은 헛작업이 되고 말았죠.

2003년 6월 19일 오후 2시, 행자위 전체회의에 앞서 소위의원들은 회의를 재개하여 ‘계룡시 관련법안심사’에 들어갔습니다. 결국 소위는 별다른 이견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됐어요. 

이후 개최된 행자위 회의장에는 들어갈 수 없어 위원장실 모니터를 통해 회의 장면들을 보았죠. 박종구 행자위원장이 “계룡시도농복합형태의 시설 등에 관한 법률안”은 원안대로 통과되었음 알리는 타봉 순간, 우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를 부둥켜 안고 축하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2003년 6월 30일, 계룡시 설치의 꿈이 실현되는 날이었습니다. 이날 주민 30여 명은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상경하여 방청권을 교부받고 본회의장에서 표결 결과를 초조하게 지켜보았어요. 이날 “계룡시도농복합형태의 시설 등에 관한 법률안”은 159명 출석에 140명 찬성으로 통과되었죠. 이로써 계룡지역민의 오랜 숙원이 해결되었습니다.

 

중국 여행을 가셨다가 인사 사고도 있었다고요?

 

당시 계룡시에는 독자(외아들)계가 있었습니다. 2010년 독자계에서 이우재 계룡시외식업조합 지부장이 운영하던 대전여행사를 통해 중국여행을 하게 되었죠. 지금 기억으로는 16명 정도가 여행을 갔었고, 인천에서 배편을 이용했습니다.

중국에 도착해서는 바로 버스로 이동했습니다. 당시 저는 버스 뒷편에 앉아 있었는데, 모두 화장실이 급하다고 해서 화장실로 이동 중 반대편 차선에서 덤프트럭이 넘어와 정면 충돌하는 것까지만 기억이 나고, 그 후로는 의식을 잃었습니다. 정신을 차린 후 일어나려고 해도 버스 좌석에서 몸이 움직이지 않았어요. 그때 버스기사와 계룡에서 같이 출발했던 일행 중 2명이 목숨을 잃었지요. 그 중 한분이 바로 외식업지부장이었던 이우재 대전여행사 대표였답니다. 총 3명이 사망한 사고였어요.

중국 병원에 10일 정도 입원해 있었습니다. 당시 김성중 충남도의원이 상해 충남출장소 직원과 함께 오셔서 현장수습을 하셨지요. 그리고 경상자만 데리고 먼저 가려고 해서 저도 “함께 가겠다”고 막무가내로 우겼습니다. 그때 저는 어깨와 다리에 부목을 대고 묶어 놓은 상태라 일절 움직이질 못했습니다. 더구나 고통이 심해 움직일 엄두를 내지도 못하는 상태였지요. 그러나 저는 죽어도 고향에 가서 죽겠다는 각오로 버티고 우겨서 고향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비행기는 좌석을 4개 탈착해야 탑승이 가능하여, 들것에 실려 배편으로 귀국했습니다.

인천에서 바로 앰블런스에 실려 건양대 병원으로 입원했습니다. 건양대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해 보니 어깨뼈가 모두 부러졌는데, 그냥 부목만 받쳐놨다더군요. 당시 중국병원의 의료 수준이 그 정도였다니 참으로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지요.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고생하면서 돌아오길 참 잘한 일 같습니다. 

저는 32살까지 대림산업 여천공단에 근무했습니다. 외아들인 관계로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님을 모시기 위해 직장도 그만두고 낙향했습니다. 그 후론 쭉 계룡에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치료를 위해 중국에 남았다면 죽었든지, 병신이 되었든지 둘 중에 하나가 됐겠지요. 불행중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초대 시의원에도 출마하셨던데, 그때 상황을 들려 주시죠.

 

2003년 9월 19일 계룡시가 개청함에 따라 그 해 10월 30일 초대 계룡시장 및 시의원 선거를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초대시장 및 시의원 임기는 2006년 민선 4기 출범 전까지의 잔여 임기였고요. 

계룡시장 선거는 ‘한나라당 김성중’, ‘민주당 강철수’, ‘자민련 최홍묵’, ‘무소속 박익만, 김영기, 이길구 후보’가 출마해 자민련 최홍묵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계룡시의회 의원 선거는 선거사상 유례없는 많은 후보자가 출마했습니다. 당시 선거는 금암동 1명, 남선면 2명. 두마면 4명 등 총 7명을 선출하는 선거였는데, 금암동에서는 3명, 남선면에서는 9명, 두마면에서는 무려 32명이 출마했지요. 

금암동에서는 ‘강흥식 후보’가, 남선면에서는 ‘이기원, 정형식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습니다. 두마면에서는 ‘김정순, 이정기, 이지웅, 이우재 후보’가 선출되었습니다. 2003년 11월 1일 초대 계룡시 ‘최홍묵 시장’이 취임하였습니다. 이어서 11월 6일에는 초대 시의회가 개원하였는데 초대 의장은 ‘이지웅 의원’이 부의장에는 ‘이기원 의원’이 선출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기호 5번으로 출마했는데 류보선 후보가 4등과 30표 차이로 5등, 제가 류보선 후보와 23표 차이로 6등 했지요. 그땐 동네마다 후보를 내지 못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앞다투어 여러 분이 출마하였습니다.

그 후 저는 선거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어요. 시에서 “공공기관유치위원장”을 맡아 줄 것을 수차례 요청해 왔지만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기원 시장 시절, 2년간 유치위원장을 맡게 되었어요. 그 당시 “건강관리공단 출장소”와 “세무서 민원실”이 개소하게 되었습니다.

 

끝으로 계룡시발전협의회와 관련, 하시고 싶은 말씀은?

 

[신도시발전협의회]가 처음 발족할 당시 저는 사무국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신도시발전협의회 김용호 회장은 이 지역 출신으로 두마농협조합장 등을 역임하였던 분입니다. 1996년 신도시발전협의회가 창립될 때부터 회장직을 맡으면서 지역발전과 주민화합의 리더 역할을 하면서 시 설치 운동에도 적극 앞장섰습니다. 신도시발전협의회는 30여 명의 회원들 회비로 운영되었지요. 물론 계룡출장소에서도 여러 방면으로 도와줬습니다. 

그 후 신도시발전협의회가 [계룡시발전협의회]로 바뀌었고 계룡시가 탄생하게 되었죠. 그러면서 계룡시발전협의회가 회장의 정치성향에 따라 정치적으로 변모해지면서 협의회 자체가 유명무실해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애향심을 갖고 있은 후배들이 계룡시발전협의회를 계승해서 잘 이끌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계룡시는 제대군인에서부터 외부에서 유입되는 인구가 많으니 계룡시발전협의회의 민과 군, 원주민과 이주민의 화합과 단합을 위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담] 전영주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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