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로고
광고
지역소식정치경제교육문화오피니언사회생활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 찾기
전체기사보기
편집  2021.12.01 [10:56]
문화 >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이색전시회] 모사작가 이민정 개인전 - ‘바람의 언덕’ 조선여인이 바람에 나부끼다
기사입력  2021/11/11 [18:25]   논산계룡신문

[이색전시회] 모사작가 이민정 개인전 

‘바람의 언덕’ 조선여인이 바람에 나부끼다

 

 

 

 

탑정호 갤러리&문화공간인 ‘바람의 언덕’은 매달 1회씩 개인전을 연다. 11월의 작가는 조선시대의 그림을 모사(模寫)하는 작가 이민정이다. 이달 6일부터 23일까지 전시한다. 

오픈식은 6일 오후 2시 ‘바람의 언덕’ 전시실에서 열렸다. 이현주 관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협연이 전시된 미술품과 전시 공간 곳곳에 스며드는 분위기 속에서 이민정 작가가 나섰다. 

“저는 문화재 모사를 하는데, 조선시대 초상화와 불화를 주로 그립니다. 재료는 돌가루와 조개껍질, 흙 등 천연 유기·무기안료 등을 사용합니다. 이번 개인전으로 지역 작가들과 소통하고, 일반인들이 접하기 어려운 조선시대 그림을 전달,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본인의 화방도구들도 함께 전시했다고 안내하였다. 

이민정 작가는 지난 3~4년 동안 공들여 완성한 조선시대의 그림 15여 점을 선보였다. 대부분 조선 시대 그림의 모사(模寫)였지만 ‘한궁도’ 하나는 창작을 가미한 작품이었다. 요즘 모사에서는 샤넬백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작가는 이제 시대를 넘나드는 여유로움도 구가하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이번 전시회 초대장의 제목은 “바람이 분다- 조선으로의 초대”였다. 바람의 언덕 이현주 관장은 “개막식에서 조선시대 그림과 현대 음악인 클래식이 조화를 이뤘다”고 감상을 풀어놨다. 이날 준비된 곡에 이은 앵콜곡은 Kazabue였다. ‘바람피리’ 혹은 ‘바람이 머무는 날’로도 불린다는 설명은 바이올린 전수빈(청주시립교향악단 부수석)이 하였다. 피아노 반주는 김주이(아트 서크로 연주자), 이렇게 둘의 협주가 앙상블이었다. 

이날 개막식에는 마을주민들도 찾아왔는데, 가야곡 인근에서는 가야천연염색 조효숙 대표, 류상선 가야곡 면장, 이응재 가야곡 이장단장 등이 자리를 함께 하였다. 탑정호가 내려다 보이는 갤러리 ‘바람의 언덕’은 야외 공연장도 있고, 코로나 상황에서 트렌드가 된 스몰웨딩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다. 바람의 언덕 바로 옆은 껍질째 먹는 ‘해오름사과’ 과수원으로 요즘 사과체험이 한창이다. 

바람의 언덕 이 동네 이름은 평매마을이다. 매운탕집 이름도 평매매운탕인데 최근에는 이탈리아 음식점 ‘알바노’를 찾는 손님도 늘고 있는 곳, 충남에서 두 번째 큰 담수호 탑정호를 내려다 보는 산노리다. 길가 바로 옆에 손만 내밀면 따먹을 수 있는 사과, 배, 감, 모과, 갈대가 지천인 산노리 ‘바람의 언덕’에서 이민정 작가와 조선 미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모사작가 이민정의 미술수다]

어렸을 적 꿈, 오늘 여기에 되살려

 

EBS 교육방송에 “임이랑의 식물 수다”가 있습니다. 애완동물 못지않게 인기인 반려식물 이야기인데, 전문 지식과 정보를 곁들인 맛깔스러운 수다쟁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림수다, 미술수다를 떨면 좋겠습니다. 

그림수다, 참 좋네요! 제 작업실은 엄사리 성원아파트 1층입니다. 정연희 선생님이 운영하는 ‘담’화실인데요, 정 선생님은 전통민화, 공필화 전공이세요. 민화 일월오봉도, 십장생도 등 색감이 매력적이어서 제가 너무 좋아해요. 옆에서 작업을 지켜만 봐도 자극이 엄청 되니까 자꾸 옆에 있고 싶어져요. 

정쌤이랑 밤새 그림 얘기에 책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어요. 얘기하다 보면 신나서 컵라면 먹고 또 수다 떨고... 화실 가면 그림보다 수다와 커피, 그 담에서야 그림으로 이어져요. 책을 사더라도 정쌤은 모란도, 나는 초상화나 불화, 이렇게 다르지만 서로가 끌어주는 맛으로 지내요. 

 

오늘 뉴스를 보니까 다빈치의 모나리자 모작이 21만 유로, 약 3억원에 팔렸다고 하네요. 진품 아닌 모작, 실제 '모나리자'를 본 떠 그린 작품이라던데요.. 모작, 모사란 무엇인가요?  

아, 모작 경매 뉴스는 종종 나와요. 이번 모나리자는 오크 패넬에 그렸는데, 그래서 독창적이라더군요. 모작이라 해도 역사와 예술성이 있다며, 모나리자 얼굴의 ‘스푸마토(그림기술)’의 경우 장인정신과 원본에 대한 충실성이 두드러진다는 평을 들었다고 하네요.  

우리는 모사(模寫)라고 합니다. 제가 하고 있는 문화재 모사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현재의 상태 그대로를 표현하는 현상모사, 그리고 처음의 상태를 유추하여 쓰여진 안료의 색과 작업 방식을 추적하여 같은 방식으로 완성하는 복원모사, 이렇게 둘로 나누어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문화재 모사에 대한 편견이 있어요. 창의적이지 못하고 색감이 다소 촌스럽고 베낀다는 식의 선입견 말이죠~~ 하지만 모사는 절대 쉽지 않을뿐더러, 모사자의 생각과 개인 성향도 그대로 드러난답니다. 

내가 이렇게 개인전을 연 것은, 대중적이지 못한 우리나라 문화재 보물 중 조선시대의 회화를 알리고 싶어서입니다. 요즘 저는 초상화와 불화에 열정을 갖고 공부하면서 작업에 임하고 있어요. 불화는 고려불화와 조선시대의 불화가 사상이 다르듯 달라요. 조선시대 초상화도 그래요. 초기에는 선의 두드러짐이 크나, 후기로 갈수록 서양화의 화법이 드러나 좀더 사실적 표현이 돋보이더군요. 

 

 

 

 

미술의 분야가 다양한데, 문화재 복원이나 모사에 눈을 뜨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실은 우연하고도 단순해요. 두마초등학교 앞에서 미술교습소할 때였어요. 더샾 아파트 후문에서 이삿짐차 하나가 나오더니 우리 교습소 앞에서 멈추더라구요. 아저씨 한분이 자그마한 독수리 인형 하나를 들고 내렸어요. “미국에서 산 인형인데 날개 한쪽 끝이 부러져서 그러니 고쳐줄 수 있는지” 묻더라고요. 알겠다고, 한번 해보겠다면서 두고 가라 했죠.

살펴보니 십만 원도 안 되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어요. 주인이 장군님이라는데 ‘훼손됐으니 돈으로 물어달라’고 했다나 봐요. ‘참 나’ 혀를 차면서 작업을 시작했죠. 그냥 수업 때 쓰는 붉은색 점토로 날개 만들어서 붙이고 연결 부위를 티 안 나게 이어준 다음 색칠하고 잘 문질러서 인형을 살려놨어요. 내가 봐도 이음새 없이 감쪽 같이 복원됐더라구요. 그분이 돈을 준다길래 “점토가 천원이니 나중에 음료수 한 잔 사세요” 했더랬습니다. 그 아저씨 ‘진짜 감사감사하다’면서 돌아갔는데, 내친 김에 #모사 복원 검색하게 되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 에피소드에서 출발했어요.....

저는 어릴 적부터 모사를 잘했던 거 같아요. 고무지우개 같은 데다가 도장도 잘 팠고요, 누가 뭐 좀 똑같이 만들어달라거나 고쳐달라고 하면 해결사 노릇도 했걸랑요......  

 

손재주가? 맥가이버나 마이다스의 손인가본데, 그런 재주는 타고 났나 봐요? 나도 중고시절 만화가가 꿈이어서 좋아하는 주인공 그대로 그리기를 참 많이 했는데, 창작도 좋겠지만 모방 흉내내기 단계도 뿌듯하고, 주변에서 칭찬까지 해주니 어깨 으쓱해지더라고요.

학창 시절 얘기는 좀 있다 하고요... 우선은 이번 전시회 관련, 모사 이야기 더 해볼게요. 미술을 꽤나 좋아했던 저는 대학은 유아교육으로 들어갔어요. 아이 둘을 키우느라 미대 편입의 꿈을 접고서 선택한 것이 아동미술 강사였습니다. 서양화와 스케치 수채화, 아동심리 또한 틈틈이 배워서 가능했고요...  십년 동안 아동 미술 경력이 있었기에 미술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어요. 

그림의 분야는 정해지지 않았으나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는 그림의 일부를 부분도라고도 해요. 그것을 연습하고 재료를 공부하고 미술사를 공부하다 보니 조선시대의 초상화가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그러다가 여기 계룡에서 서울 강북으로 불화를 배우러 다녔어요. 탱화 불화의 세계에 들어가면서 문화재 및 복원에 대한 관심이 깊어져, 전통 재료와 방식이 궁금해져서 찾다가 보니 모사공이라는 직업이 있더군요. 옛날 나라에서 화공을 시험으로 뽑아 여러 작업을 하게 하였는데, 현대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1년에 한 번씩 시험을 봐서 20명 안쪽으로 모사공을 뽑습니다.

모사공 시험 지원은 전공이나 나이, 성별 불문이고요 오직 실력으로만 겨뤄요. 주어진 시간 안에 주어진 공통 시제를 똑같이 재현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집니다. 전통 안료와 전통 방식으로 한지 위에 오래된 문화재 그림을, 박락되고 변색된 그대로를 똑같은 색으로 표현하는 게 평가기준이랍니다. 이러한 길을 알게 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모사공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지만, 새로운 도전이라서 열정이 되살아나는 듯해요!^

 

 

 

 

열정이라! 가슴 뛰는 일이야말로 삶의 원동력일텐데요.... 학창시절 미술이나 다른 예술 활동은 어떻게 해왔는지요?

 어릴 때 이야기를 소환하게 해주시네요!^ 제 부모님은 초등학교 앞에서 꽤 잘 나가는 문구사를 하셨어요. 서점이 없을 때라 문방구 옆칸에 학습교재와 만화, 잡지 등등도 함께 팔았는데, 그 때 제가 ‘동명성왕’을 만화로 읽었어요 ~

가게가 노출되는 곳이라서 영화 포스터를 붙였는데, 그러면 초대장 열 장을 주었지요. 그거 받으면 동네 아이들이랑 줄서서 영화관까지 걸어가고, 중간에 풀밭에서 메뚜기 잡느라 늦었던 기억도 나네요. 거기, 제 고향이 경북 영주랍니다. 소백산이 가까워서 국망봉과 비로봉에 자주 올랐는데 부석사도 가까워서 가끔씩 갔어요~ 아람단 아시죠? 아람단원으로서요. 

 

어린 시절 자연 속에서의 생활이 미술활동으로 어떻게 이어졌나요?

고등학교 미술동아리 활동에는 꽤나 적극적인 여고생이었습니다. 지도교사는 한국화를 전공한 미술선생님이셨어요. 어느날 제가 부채에 하회탈 다섯 종류를 쓰고 탈춤을 추는 그림을 모사해서 그렸더니 그게 너무 예쁘더라구요. 그런데 미술선생님이 다가와 부채 위쪽에 붓으로 “에헤라 절씨구..” 하구 한 구절 먹으로 써주셨어요. 그러자 멋진 작품이 된 거예요. 소름 끼치더라구요^^ 동판에 용을 그리면, 낙관을 그려 넣어주시기도 했어요.

전시회 작품을 교장선생님께 가져가서 판매한 적도 있어요ㅎㅎ~ 매화나무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건데 “어이없다” 하시면서 사주셨죠^^ 전시회 판매한 돈을 모아 연말에 모두 같이 고아원에 이불 사들고 가기도 했답니다.

 

남자들 군대 얘기하면 끝이 없는데, 여고시절 이야기도 엇비슷할 거 같아요?^

수다에 남녀 구분이 어딨겠어요?^ 전시회는 1년에 한번은 전시장에서, 한번은 야외교정에서 했어요. 저는 그때도 인물화가 좋아서 마를린 몬로 얼굴만 덩그라니 스케치해서 선생님께 드렸더니, 먹으로 바탕을 칠해주시더라구요~ 헐 정말 멋지단 생각이 들었는데, 금상첨화 거기에 음악이 얹어져요~~ 전시장에는 “모나코”라 자꾸만 외치던 노래가 흘렀는데, 그 샹송은 선생님의 선곡였던 듯해요. 연말이 되면 크리스마스 카드도 만들고, 전시회 하면 굿즈로 팔고 그랬네요 ...

우리를 지도해주시던 선생님 이름이 김만영 미술쌤인데, 교장으로 승진 후 정년 퇴임하셨다는데, 어찌 지내시는지 늘 궁금해요. 고등학교 동아리 시절 단체작품이 아직도 학교 복도에 걸려 있더라구요. 몇 년 전에 갔다가, 완전 감동 먹었어요. 제가 언젠가는 단체작을 가져오는 게 버킷리스트 중 하나입니다. 너무 커서 집에는 못 걸고....그것 또한 피카소의 게르니카입니다. 모작이었죠. 그땐 “뭐 이런 그림을 이런 재료로? ... 이게 뭐야 했는데?” 다 기억납니다.

 신문을 곱게 불려서 도배풀로 반죽을 한 다음 가로 3m 세로 130 정도의 합판 위에 손으로 다 같이 꾹꾹 눌러가며 까는 밑작업이 들어갔어요. 다 마른 다음 밑색을 칠하고 선생님이 도안을 뜨면 8명 정도가 파트를 나눠서 세밀하게 그리고 칠하는 작업을 했지요. 미술시간에 칠판에 가곡가사 적어놓고 노래를 부르셨는데ㅋㅋ 애들이 좋아할 리 없죠. 1년에 두 번 방학 때마다 기차 타고 야외스케치를 단체로 가면 여름은 산, 한번은 겨울 바다였어요. 사진도 손수 찍어서 나눠 주셨는데, 삼십년 전 당시는 참 순수했던 거 같아요...

 

미술에 음악에, 사진에.... 종합예술이네요. 영화 한편 찍어도 되겠어요ㅎ~ 이젠 조선 시대 영화를 찍어볼까요?^ 

“가슴에 그득 서린 일만 가지 봄기운을 담아 붓 끝으로 능히 인물의 참 모습을 나타내었다.” 신윤복의 미인도에서 발췌한 건데요, 제가 초상화를 배울 때 달달 외운 문장이 또 있습니다. “전신사조, 전신사조는 인물의 외형묘사에만 그치지 않고 그 인물의 고매한 인격과 정신까지 나타내야 한다는 우리의 전통적 초상화론입니다. 물, 나무는 우리의 전통적 가치 안에서 한국적 초상사진에 대한 접근과 구현을 추구합니다.”

이번 전시회에 필요한 소품을 당근에서 구매했어요. 갑자기 그림 그리다가 “당근” 하면 얼른 관저동 가서 고가구 실어오고 소반 가져오고, 자개 테이블 사다가 화실에 두고 그랬답니다~^^ 그 소반을 누가 자꾸 팔으래요. 여기 이현주 관장님은 그냥 팔자 하시는데, 정작 팔려나가야 할 게 그림이건만... 우픈 에필로그죠?^

올해는 이 전시회 마치고 대전에서 두 번째로 개인전으로 이어갑니다. 이달 25일부터 대전 대흥동 “꼬시꼬시”에서 해요. 꼬시꼬시는 차와 브런치도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랍니다. 거기는 공간이 돼서 새로운 작품도 추가로 선보여요. 

그러고 나서는 내년도 작품 밑작업 들어갑니다. 수월관음도나 해학반도도 같은 대작들을 완성하려 준비중입니다. 앞으로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할 부분이 불화입니다. 제가 안료 공부할 때 정종미 교수님의 책으로 공부했습니다. 안료 만드는 법은 누구도 잘 가르쳐 주지 않으니 독학하고 실험해보며 용맹정진할 수밖에 없더라구요. 

 

그런 현실에 머리가 좀 무거워지네요.ㅡ. 백투터퓨처를 해볼까요?

큰애가 열 살 때, 동네에서 미술교습소를 오픈했을 때예요. 아이 둘을 키우면서 같은 또래 아이들을 내 아이 바라보듯 가르쳤는데, 그게... 내 맘이랑은 다르게 바라보기도 했어요. 힘이 들 때쯤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 아이 어머니가 ‘미술을 좀 배우고 싶다’며 찾아왔어요. 교습소 건너편에 아동전문 재활치료전문 병원이 있었거든요.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두 명이 세 명 되고... 엘리베이터 없는 아파트 상가 이층인데 휠체어 때문에 안고서 올라오곤 했는데... 계단까지 가던 뒷모습을 항상 기억하곤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오던 그 아이들과 그 아이 엄마들~ 제가 그림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게 했던 분들입니다.

오늘 아랫층 애기엄마랑 무거운 이야기를 나눴어요. 한 학생이 가족을 뒤로 하고ㅠㅜ.... 앞으로 저는 작품 활동뿐 아니라 교육 분야에서 미술치유 같은 재능 기부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요즘 저는 다른 사업 준비를 하기 위해 사업자를 하나 냈습니다만, 큰 틀에서는 교육이요 삶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박석신 화백의 화첩기행 생각이 나네요! 그분 좀 괴짜인 것 같아요^^ 나도 자유혼으로 미술세계를 관조하며, 거기에 빠져 모사에 집중하다가, 좀더 경지에 오르면 도중에  창작의 입김도 불어넣으면서 동서고금 훨훨 넘나들면 참 좋겠네요!^

 

수필(隨筆)을 붓이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고 하잖아요? 글쟁이 붓이든, 화가의 붓이든 거기에는 날개가 달렸지만, 꼭 원하는 방향으로만 날아가는 건 아닌 듯해요. 설령 그 목적지가 다소 달라지더라도, 그때 거기서 정비하면서 원래의 목표를 향해 가든, 왔던 그대로 가든 결정할 수도 있겠고요~~ 오늘 미술수다는, 여기까지 표류한 걸로 하죠~ 외로운 작품의 길에 건승, 건필(健筆)을 기대합니다!  

 

[대담] 이진영 기자

ⓒ 주식회사 계룡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관련기사목록
광고

[둥지의 캠핑이야기] 무창포해
광고
가장 많이 읽은 기사
‘제13회 2021 풀뿌리자치대상 자랑스런충청인상’ 시상식 / 논산계룡신문
[특별초대석] 이용흠 연세대 교수 "논산을 전국단위 ‘건강힐링도시’ 메카로" / 논산계룡신문
충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계룡시에 성금 1600만원 기탁 / 논산계룡신문
계룡시, 소비자식품위생감시원 직무교육 실시 / 논산계룡신문
연극 ‘그 남자 그 여자’ in 계룡시 12월 4일 / 논산계룡신문
계룡시, ‘2021 재난대응 안전한국 훈련’ 실시 / 논산계룡신문
논산시, 에이즈 바로알기 캠페인 전개 / 논산계룡신문
‘논산시 일상회복응원 희망지원금’ 신청‧접수 / 논산계룡신문
논산시-신세계푸드, 농가의 안정적인 판로 확보 업무협약 체결 / 논산계룡신문
[표지초대석: 전영한 전 충남사회단체대표자회의 상임대표] 평생 ‘목적 뚜렷한 삶’, 전 재산 사회기부 / 논산계룡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회사소개광고/제휴 안내청소년보호정책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주)계룡일보 본사 | 충남 계룡시 서금암2길 19-3
대표전화: 042-840-5114 | 팩스: 042-840-5113 | e-mail: ngdnews@naver.com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충남 아 00072 | 주간신문 등록번호: 충남 다 01288 | 등록일: 2010-04-29
발행인/대표이사: 전영주 | 편집인: 전영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전영주 | 인쇄인: 이훈무
당사의 기사를 동의 없이 링크, 게재하거나 배포하실 수 없습니다.무단 사용하는 것은 저작권법에 저촉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2010 Gyeryongdail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