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초대석] 김태성 "'불광불급'의 마음으로, 논산 청년정치의 새 길을 열겠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논‧계‧금 청년위원장
"아픔 속에서 더 단단해진 청년"
김태성 청년위원장은 논산 취암동에서 태어나 논산동성초–대건중–연무고를 거쳐 우송대학교에서 토목환경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건양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하며 시야를 넓혔다. 대전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중병으로 모든 걸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머니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아버지 옆에 있는 것, 그것만이 제 삶의 중심이었죠." 논산시청 기간제 근로자로 일하며 경제적 수입보다 아버지의 곁을 한 시간이라도 더 지킬 수 있는 것에 우선을 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년 아버지는 췌장암으로 눈을 감았다. 시련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희망을 잃어버린 어머니는 큰 사고로 쓰러져 결국 평생을 병원에서 지내야 했다. 설상가상, 셋째 누님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한 사람의 인생에 닥치기엔 너무 큰 슬픔이었다. 삶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듯한 격동 속에서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지역사회 활동이라는 버팀목을 붙잡았다.
"지역사회 속에서 다시 찾은 존재 이유"
“나쁜 생각이 들 때마다 더 열심히 뛰었습니다. 지역봉사가 제 아픔을 잊게 해줬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김태성 청년위원장은 청년들의 성장과 자립을 돕기 위해 논산 최초의 청년창업단체 ‘청출어람’을 만들었고, 사라졌던 논산YMCA 재창립위원회를 조직해 지역 YMCA를 다시 세우는 데 성공했다. 또한 논산시민경찰연합대, 논산청소년YMCA 등에서 활동하며 봉사와 시민사회 운동에도 앞장섰다. 특히 청소년수련관, 청소년상담센터, 학교밖청소년센터에서 약 4년간 청소년지도사, 상담사로 근무하며 300여 명의 위기청소년에게 진로와 다시 살아갈 기회를 열어 준 일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보람으로 남아 있다. 이후 그는 다시 논산시청 공무직으로 근무하게 되었고, 민주노총 산하 비정규직 노동조합에 가입해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활동하며 공공노동 현장의 현실을 가까이서 깊이 경험했다.
"정치의 시작, 그리고 새로운 다짐"
정치 입문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였다. 어머니가 오랫동안 지역 여성단체협의회에서 봉사해 온 영향도 자연스레 스며 있었다. 여러 사회 활동을 하며 만난 황명선 국회의원과의 인연이 정치적 첫걸음을 만들었다. 그는 논산·계룡·금산 노동위원장을 거쳐 현재 청년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민주당의 최전선에서 지역 청년층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특히 12.3 내란 사태에 따른 윤석열·김건희 탄핵·구속 촉구 집회에 적극 참여하며 거리에서 발언자로 나서는 등, ‘침묵하지 않는 청년정치’를 실천해 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민주당원에서 시작해 청년위원장이 되기까지, 저는 늘 ‘시민을 위한 하나의 체스말’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대한민국이 다시 정상화되고, 시민이 불안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데 제 청춘을 쓰고 싶습니다.” 논산에서 태어나 논산에서 성장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도 더욱 간절하다. “어떻게 하면 논산을 충남에서 가장 멋진 도시로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저는 오래전부터 품고 있었습니다.” 김태성 청년위원장은 도시 재생, 청년 기회 확장, 지역인재 육성, 청소년 정책 등 다양한 정책 영역에서 지역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이제 불혹의 나이가 훌쩍 넘어선 그는 또렷한 답을 내놓는다. “논산은 잠재력이 많은 도시입니다. 누구나 한번 와보면 계속 생각나는 도시, 그런 논산을 만들겠습니다.”
"비어 있는 이력서, 그러나 가득 찬 시간"
김태성 청년위원장의 생애에서 가장 뜨겁고 치열했던 시간들이 이력서에는 '빈칸'으로 되어 있다. '가장'도 '주부'도 '간병인'도 아니었지만, 그의 희생과 책임으로 가족을 위해 하루도 쉬지 않았던 이타적인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그를 무너뜨리는 대신, 새로운 길로 이끌었고, 결국 오늘 정치적 도전을 가능하게 한 힘이 되었다. 오히려 그 이력서의 '빈칸'이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던 불광불급의 시간이었고, 지금의 그가 만든 ‘화양연화’인 것이다. 김 청년위원장은 '걸림돌'을 딛고 올라서 '디딤돌'로 바꾸었고, 그 속에서 ‘이타적 삶’이 무엇인지 몸으로 깨달았다. 그의 깨달음에는 늘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들을 향해 손을 내미는 그의 모습은 지역 청년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저는 아직도 불완전한 정치 초보입니다. 그러나 절대 포기하지 않는 청년입니다. 불광불급의 마음으로, 논산의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보겠습니다." 그의 '화양연화'가 곧, 논산의 '화양연화'로 꽃피기 바라는 마음뿐이다.
전영주 편집장 <저작권자 ⓒ 논산계룡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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