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집] 내가 살아가는 방식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

논산계룡신문 | 기사입력 2026/02/02 [10:03]

[달팽이집] 내가 살아가는 방식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
논산계룡신문 | 입력 : 2026/02/02 [10:03]

 

어려워도 절망하지 않고

 

이제는 봄이다.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 봄이라고 하기에는 이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죽은 듯이 움츠리고 있는 나뭇가지에서 분명 파릇한 봄을 엿볼 수 있다. 가까이 오지 않았지만 봄이 오고 있다는 생각은 봄을 느끼게 한다.

 

세상만사 생각하기 달렸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내가 중학생쯤이었을 것이다. 책상이 있었지만, 그날 나는 방바닥에 엎드려 공부하고 있었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그날도 나는 라디오를 켜놓고 있었다. 어른들은 정신을 집중하여 공부하려면 라디오를 꺼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공부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공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버릇이 지금도 남아서 티브이를 켜놓고 책을 읽고 글을 쓰기도 한다.

 

그날도 나는 방바닥에 배를 붙이고 엎드려서 무슨 책을 읽고 있었다. 닥종이로 바른 방문에는 초겨울의 햇살이 따뜻하게 비치고 있었다. 아마도 소죽을 끓이고 있어서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해가 넘어가기 직전이라 소죽을 끓이려고 불을 땐 지가 오래되지 않아서 아직 방바닥이 달아오르지 않을 시각이었다. 그렇지만 불을 땐다는 생각만으로도 방바닥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책을 보다가 한눈을 팔다가 라디오를 들었다. 무엇을 해도 다 좋았다. KBS 라디오에 <환우의 시간>이라는 프로가 있었다. ‘환우라는 말은 사전에 없는 말인데, 병상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환우(患友)라는 말을 누가 지어냈나 보다. 나는 해질 녘마다 이 방송을 들었다. 특별히 내용이 좋아서가 아니라 거의 매일 그 시간에 나는 방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라디오를 켜면 그 프로가 진행 중이었다. 어떤 때는 방송을 시작한 뒤였고, 어떤 때는 아직 시작 전이었다.

 

그 프로의 시그널 뮤직이 타이스의 명상곡이었다. 나는 매일 이 음악을 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이 음악을 들으면서 마치 내가 중학생인 것 같은 아늑함에 잠기곤 한다.

 

어느 날이었던가, 나는 문종이를 뚫고 들어오는 햇살을 가만가만 손등에 받고 있었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투병하고 있는 청취자의 사연을 소개하였다. 그 사연 중의 하나가 인상적이었다. 다름 아닌,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말이었다. 스피노자라는 철학자의 말이라고 덧붙였다. 많은 사람들은 종말이 온다고 하면 심었던 사과나무도 가꾸지 않을 일인데, 새로 나무를 심다니. 나는 그 말을 가슴 깊이 새겼다. 그런 뒤에 나는 자주 이 말을 곱씹어 보곤 했다. 그래서 나는 언제라도 절망하지 않는다. 이런 불안이 가까이 다가오는 기색이 보이면 나는 더 마음을 가다듬고 힘을 모아 일에 집중한다. 그럼으로써 그 절망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다.

 

뿌린 대로 거둘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이씨를 심으면 오이가 열리고, 참외 씨를 심으면 참외가 열린다. 오이씨를 심고 아무리 물을 주고 거름을 주어 가꾸어도 참외가 열리지 않는다. 오이씨를 심고 참외가 열리기를 바라는 것은 가당찮은 일이다. 처음부터 오이와 참외가 다르기 때문이다. 참외를 거두고자 하면 오이씨를 심지 말고 참외씨를 심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복을 받아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복을 지어 내 앞에 쌓이게 하여야 한다. 입으로는 복을 내려 달라고 하면서 몸으로는 복을 쫓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복을 지으려고 마음에 없는 어떤 일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평소에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늘 가슴에 새기어 담고 있는 말은 인과응보(因果應報)이다. 내가 학급 담임을 할 때마다 교실 한쪽에 붓글씨로 크게 써서 붙여 두었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첫째는 나 자신에게 수없이 이르고 다짐하는 말이었다.

 

세상이 이 말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정직하게 일한 사람은 복을 받아 잘 살고, 게으르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잘 살지 못하는 것이 공평하지 않겠는가. 정직이나 부지런함과 관계없이 모두가 같이 산다면 그것이 불공평한 세상이다. 나는 이 말을 믿기 때문에, 이 말이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정직하게 살려고 하고, 부지런히 일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 말은 나를 부지런히 살게 하고, 정직한 마음을 갖게 한다. 참으로 고마운 말이다.

 

이와 같은 말로 사필귀정(事必歸正)이 있다. 모든 일이 반드시 바르게 된다는 말이다. 노력이 헛되지 않고, 거저 되는 일이 없다는 이 말 또한 나를 분발하게 한다. 모든 일은 내가 뿌린 대로 거둘 것이라는 믿음으로 나는 오늘도 나를 채근한다.

 

 

▲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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