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집] 봄비 내리는 산기슭에서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

논산계룡신문 | 기사입력 2026/03/09 [14:10]

[달팽이집] 봄비 내리는 산기슭에서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
논산계룡신문 | 입력 : 2026/03/09 [14:10]

 

충화 만세 운동 추모

 

봄비는 순하게 내리고 있었다. 새싹을 준비하는 식물에게는 더없는 에너지이겠지만, 아직 추위가 멀리 가지 않아 몸을 웅크리게 한다. 내의를 입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가 추워서 떠는 것보다 차라리 후덥지근한 쪽을 택했다.

 

며칠 전 어떤 회의에 참석하여 옆자리의 부여문화원장님에게 강경에서 만세 운동을 재현하고 시가행진까지 한 일을 자랑삼아 말했었다. 실제는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부여는 오래전부터 만세 운동 재현 행사를 성대하게 해 오는 것을 알고 내가 열등감을 해소하고자 꺼낸 말이다.

 

올해도 그날을 기억하여 행사가 열린다는 말에 부러움으로 나도 그 행사에 참석하겠노라 했다. 내가 특별히 부여 행사에 참석하여 무슨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행사를 어떻게 준비하여 치르는가를 눈여겨보아 공부하려는 목적이었다.

 

행사장은 초봄의 쌀쌀한 바람이 계속 불었다. 핫팩을 쥔 손등이 시렸다. 본 행사 시작까지 서둘러 온 사람들이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은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그렇고, 몇 년 전에 충화의 이 행사에 참석하였을 때는 기념 조형물만 덩그러니 있어서 좀 쓸쓸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간 부여군에서는 충남 최초의 만세 운동이 일어난 곳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많은 정성을 쏟아 부었음을 알 수 있었다. 뒤에 경과 보고에 의하면 이미 몇억 원을 썼고, 현재도 5억 원을 들여 주차장 공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참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러 너무 지나치다는 평가를 받는 일이 있는데, 국가 보훈 사업은 아무리 많은 예산을 들인다 해도 지나치다 할 수 없다. 특히 그 자손들에 대한 예우는 각별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분들의 희생 덕택으로 오늘의 우리가 있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을 추앙하면서 후손들을 잘 보살펴야 한다. 그러나 국가는 그런 일에 인색하여 안타깝다. 부여군의 조치(措置)는 때가 늦기는 하였으나 매우 적절하다. 다른 지역에 본이 되어 널리 파급되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느 마을에 예핌과 옐리세이라는 두 노인이 살고 있었다. 예핌은 매사에 철저하며 부자였고, 옐리세이는 쾌활하고 깊은 신앙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오랜 꿈이던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떠났다. 얼마쯤 갔을 때 옐리세이가 목이 말라 물을 얻기 위해 오두막에 들리는 사이, 예핌은 앞서 길을 갔다. 옐리세이가 오두막에 들렀더니 흉년으로 굶주려 늙은 어머니와 아들 내외, 아이 둘이 죽어가고 있었다. 옐리세이는 이들을 보고 그냥 갈 수가 없어 그들에게 다음 해에 농사지을 땅을 찾아 주고, 말과 마차를 사 준다. 그러느라 여행비를 다 쓰고, 지체하여 그냥 고향으로 돌아온다. 힘차게 순례길을 이어가는 예핌과 비교하면 요량이 없고 의지도 나약해 보인다.

 

혼자서 예루살렘에 도착한 예핌이 성전에서 참배하는데, 옐리세이의 성스러운 얼굴이 보였다. 자신을 앞질러 벌써 도착하였나 하여 그를 만나려고 문에서 지켰으나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참배 후에 고향으로 돌아오니 집안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옐리세이는 이미 돌아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독실한 신앙심을 가진 톨스토이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신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며, 행복에 도달하는 길인가를 제시한다. 오랫동안 꿈꾸던 성지 순례를 포기하면서 불쌍한 사람을 도와 준 옐리세이를 통해 나보다도 남을 위하는 길이 행복에 도달하는 길임을 깨닫게 한다. 말은 하기 쉬우나 실제로 행하기는 어려운 남을 위하는 일’. 봄비 소리를 들으며 나의 삶을 곰곰이 생각한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그에 따라 사는 방식도 다르다.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있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 아끼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남을 위해 주고 그들이 불행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 나아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따뜻하고 인류는 발전하는 것이다.

 

 

▲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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